제주도에서 만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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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만난 나 
 김동순 (여   34세) 
남편 여름휴가를 맞아 7월 28일-30일까지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한 생각을 버리지 않고,
"언어로 이루는 자기완성" 편에 나오는 말을 적용해 보았더니 그대로 실현된 선물 같은 여행이었다. 공짜로 떠나는 여행……. 그런 기분이었다. 또 그때 맞춰서 남편의 회사에서 여행경비만큼 성과급이라는 명목으로 휴가비도 나왔다. 원래는 회사가 어렵다고 안 주기로 한 돈이었기 때문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 공부를 하면서 실험을 해보니 그대로 실현된 기분…….  이것은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남편과 딸 연오와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그 다음날 문제가 발생했다.
28일 제주도에 도착해서 1박을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남편이 깨더니 갑자기 너무 어지러워 움직일 수가 없다고 했다. 당연히, 제주도 여행은 다닐 수가 없었다. 체한 줄 알고 혼자서 한의원을 알아보고, 어린 딸 연오를 함께 데리고서 약국을 찾아 돌아다녔다. 일요일이라 인근엔 문을 연 한의원도 약국도 잘 보이지 않았다. 겨우 약국을 발견해서 남편의 증상을 말하고, 약을 사 왔다. 남편에게 약을 먹이고, 나도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잤다. 좀 자고 일어나니 남편은 또 자는 나를 깨웠다.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 생각으로 남편이 체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좀 더 있어보라고 하고, 나 또한 몸이 불편하고 힘들어 좀 더 자버렸다. 사실은 나 혼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의 고통이 어떠한가를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내 상황만 생각했었다. 당장 내 몸이 불편하고, 또 아이를 엎는 띠도 없는 상황에서 연오를 데리고 움직여야 하는 생각에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이 그냥 낫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이 아픈 상황에서 마음으로는 피하고 있었다. 아마 평상시에도 그랬을 것이다. 엄두가 나지 않았을 때는 일단 내 생각으로 상황을 작게 만들어서 일단 피하고 보는 그런 습관이 나에게 계속 되었던 것 같다.

잠에서 깨어보니 가벼운 상황이 아니었다. 남편은 119를 불러 병원에 가자고 했다. 호텔 프론트에 전화해 물어보니 3분거리에 제주대학병원이 있다고 걸어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속이 심하게 울렁거리고, 어지러워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호텔직원의 도움을 받고, 콜택시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일요일이라 일반 진료는 보지 않은 상태였다. 기본적인 사항을 묻고, 머리를 비틀고, 몸을 떨구었다 해보고, 또 피검사를 해본다고 1시간 30분동안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지만 병원에 가니 마음이 편안했다. 병원에 오기 전엔 남편은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 눈을 감고 직원의 부축을 받아 겨우 움직였는데, 그제서야 좀 안정되어 보였다. 사실 나는 응급실을 무서워하고 싫어했다. 그런데 지난주 스님의 말씀 중에 상대가 나에게 묻는 것은 야단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황을 정확히 알기 위한 것이라는 법문을 듣고 난 후에 내 내면의 인식체계가 좀 바꿔진 모양이었다. 그러니 진료하는 모습을 보고도 불안하지 않고, 상황을 정확히 알기위해 진료하는 모습으로 편안히 바라봐진 걸 보니 말이다.
그렇게 2시간 쯤 있다가 피검사 후 아무 이상이 없고, 귀 쪽 반고리관에 문제가 생겨 일어난 일이라고 하루 분의 약을 지어주고, 집에 돌아간 후 신경과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호텔에 돌아온 후 처음에는 좀 괜찮다 싶더니 남편은 계속 어지럽고 힘들다고 했다. 좀 있더니 낼 아침 일찍 집에 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동안 참고 있었지만 나는 사실 속으로 화가 났다. 남편이 미웠다.

‘대강 좀 하지. 든 돈이 얼만데……. 제주도까지 와서 관광도 못하고 이러고 돌아간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너무 자기 생각만 하는 거 아니야?’
속은 상했지만 나는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비행기표가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내일 일찍부터 나보고 공항으로 나와서 비행기표가 생기는 게 있으면 구해 가라고 했다. 더 화가 났다. 그때부터 나는 자리에 누워버렸다. 아픈 남편에게 이런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사실 몸으로 다 드러났지만……. 그런데 속에선 계속 내면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화가 너무 나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화는 더 뻗치는 것이었다. 아이에게까지 신경질 내고 소리 지르고…….
잠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잠을 자다가 새벽 5시쯤 눈을 떴는데 한숨이 났다. 앞으로의 내 상황이 보였다. 남편의 어지럼증은 가벼운 증상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에겐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지금처럼 저러다간 남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순간 나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나를 만들어버렸다. 막막했다. “뭘 해서 먹고살지?”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울다가 자다가 6시쯤 남편이 눈을 떠서 몸 상태를 확인했다. 자는 모습을 보니 편안해보이진 않았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남편 옆에 가만히 있는데 또 눈물이 났다. 옆에 있는 남편도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정리를 해보자!’
여행 가방 속에는  "라이프아트" 란 책이 있었다. 미술의 원리 편이란 부분을 읽었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독립적으로 드러난 존재가 아니다. 관계에 의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은 그것을 인식하는 미의식과 만나 완전한 존재로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대상이 변했다면 미의식이 동시에 변한 것이다. 미의식이 변한다면 대상 또한 그와 같이 변한다. 이때, 나를 미의식 자체로만 한정한다면 나와 대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런 사실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남편과 나와의 관계, 내가 가정생활에서 얼마나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나를 생각해보았다. 물론 지금은 남편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나는 육아와 살림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편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진다는 책임 하에 나는 육아와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가정생활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항상 뻔뻔하게 집안에서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남편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키고 살았다. 사실, 나는 어떤 부분도 책임지지 않고 남편이 경제, 육아와 살림을 하는 나 모두를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 상대에게 짐을 지우고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한 이 상태……. 내가 가정을 꾸리는 주체적인 한 구성원이었다면 남편이 아플 때 그런 마음이 일어나고, 그렇게 대처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 내가 이러고 살았네……. ”
그리고 막상 삶에서 오는 모든 걸 공부꺼리로 돌리고 살아가자고 했는데, 현실로 나타나니 막막하고 피하고 싶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냥 이러면 되지, 그까짓 그런 일 갖고…….    다른 이들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지 못한다고 쉽게 생각    했었는데…….
이제 아무리 작게 보여도 남의 말을 쉽게 하지 못하겠다.

난 모든 일을 잘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는데, 그러나 막상 현실에 부딪히니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 대상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서 내 내면의 인식체계가 바뀌지 않고는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또 이렇게 계속 행동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휴가 때에는 집에서 쉬면서 남편과 수련회준비를 하기로 했었다. 나도 남편도 수련회를 진행시켜 나가야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제주도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제적인 부담감, 수련회 준비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망설이다가 화요일 ‘언어로 이루는 자기완성 법회’시간에 “언어의 논리 편에서 모든 현상은 완전합니다. 아니 완전하기 때문에 현상으로 드러납니다. 현상은 조건 따라 일어나게 되어있으므로 조건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현상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라는 부분을 들으며 “그래 지금 비행기표도 다 매진된 상태지만, 이런 내 생각이 일어났다는 게 완전한 것이니까 제주도에 갈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못가면 조건이 맞지 않으니까 이번엔 일어나지 않겠지. 뭐 암튼. 나도 모르겠다. 일단 남편한테 표 구하라고 연락해보자.” 그때 여행사 하는 어떤 분이 생각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그분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휴가 이틀 전에 패키지 상품으로 떠난 선물 같은 여행이었다.
제주도를 여행을 하기 전에 이런 실험도 했었고, 제주도에 도착해서 갑자기 남편이 아픈 사건을 통해서 내 자신이 가정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알았으니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제는 가정을 이끌어 가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는 실천을 해야 할 때였다.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정해져 있는 것은 하루 동안의 관광시간과 저녁에 돌아 갈 비행기 표 예약뿐이었다. 우선 나는 남편을 깨웠다. 호텔에서는 어차피 10시 이전에 나가야 하니까. 하루를 관광하고 집에 가자고 남편에게 얘기했다. 우선 일어나 씻어보고 안되면 그때 공항으로 가보자고 했다. 그렇게 그렇게 해서 이틀 중 하루 관광을 하고 우리 가족은 무사히 귀가를 했다.

제주도 여행을 통해 여행과 수련회가 끊어진 게 아니라, 여행지에서 나는 정말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를 점검하는 체험 수련회를 하고 온 것이었다. 화가 날 때 내면정리의 필요를 인식했던 점, 법회 때 알게 된 부분을 실험해보고 체험해 본 일,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그 한 사건으로 끝내버리지 않고 그런 대상에 대해 내가 인식하고 살아왔던 부분을 살펴보고 내 발전의 부분으로 정리하려 했던 점은 스스로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내면이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제주도 여행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인생(人生)여행 속에서 나를 만나가는 것이구나.

꼭 참나를 만나는 멋진 인생이 되기를 발원하며, 이렇게 마음의 바탕을 길러주시는 스님의 참된 가르침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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