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생활불사운동이 시작되면서 저는 저의 상황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아들 내외는 이사를 나갔고, 혼자 살면서 무엇을 할까? 하면서 길을 다니다 보니 박스다, 공병이다, 캔이다 이런 것들이 버려져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걸 고물상에 갖다 주면 돈이 되고 버리면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것을 주워서 집 근처 고물상에 갖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새벽 고물이 보물로
제가 사는 동네는 화, 목, 토 일주일에 3일은 집집마다 쓰레기를 내어놓는 날입니다. 아침 4시 반이면 시장 보러갈 때 끌고 다니는 조그마한 발통 2개짜리 장바구니를 끌고 동네를 돌며 쓰레기 봉지를 살핍니다.
캔, 애들 음료수 먹은 깡통, 공병, 신문, 책, 박스 이런 걸 3시간정도 동네를 돌아 모아서 고물상에 갖다 주면 3천원, 2,500원 줄때도 있고 운 좋은 날은 4천원, 5천원 될 때도 있습니다. 멀리 있는 딸은 전화를 하면 아침마다 그거 제발 그만 하라고 하지만 저는 물 아끼고 전기 아끼고 뭐 이런 것은 몸에 배여 있어 절약할 것이 없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청정생활불사운동에 동참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방법은 다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물 판돈으로 불사에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돈이 필요할 때마다 용돈이 생기고 부처님오신 날, 백중, 촛불재 때는 저와 인연된 가족, 사돈네들까지도 천도재를 올릴 수 있게 돈이 돌아갔습니다.
예전의 힘들었던 생활
요즘은 생활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변화 되었는지 과거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스무 살 갓 넘어 10살 차이가 나는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결혼생활은 남편과 나이 차이가 나고 제가 어리다 보니 집안일은 오순도순 의논해서 하기보다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남편은 결혼을 하자마자 그해부터 시어머니가 자신을 칠성 기도하여 낳았다고 칠성기도를 하라기에 칠석날 북두칠성을 보면서 절을 했습니다. 기도가 뭔지 모르고 남편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첫째 딸을 놓고 2년 후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돌잔치 국도 못 먹고 아파 점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픈 아들을 위해서 칠성기도를 들이라는 말을 듣고 그해 칠월칠석부터 절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30여년 이 절 저 절을 다니면서 기도, 주력, 좌선 등 해보지 않은 것 없이 다 해보았습니다. 해인사, 통도사등 유명한 사찰에서 동안거 하안거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면 부처님이 다 해주는 줄 알고 기복인 줄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종교생활이고 부처님을 믿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울화鬱火가 감사한 마음으로
국제선원에 와서 대해스님의 법문을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죽어서 관 안에 들어갔는데 무엇을 듣기를 하나, 보기를 하나, 화 날 것이 없다.”는 말씀을 듣고 “아! 그래 놓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식과의 관계에서 화가 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저도 그렇게 놓으니 잘 놓아졌습니다. 본래 제가 부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 때문에 절에 나가게 되었으니 아들은 저의 스승님입니다. 우리 아들 부처님은 저를 엄청 공부를 시킵니다. 예전에는 아들이 무슨 말을 하면 내가 엄마인데 하는 상相이 먼저 나와서 화가 올라오곤 했습니다. 화를 못 풀어 도반에게 전화를 하여 울며 하소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부처라는 것이 확고해지면서 화나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도반의 전화번호도 잊어버릴 정도입니다. 청정생활불사운동을 하니 마음의 여유도 저절로 찾아왔습니다. 이번 설에는 아들 부처님, 며느님 부처님, 손자 부처님한테 덕담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편지로 써 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받으려고만 하는 둘째 딸, 힘들면 저에게 전화하여 시끄럽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딸에게 미운 마음을 냈었는데 청정생활불사운동을 하면서는 한생각 내는 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기에 딸이 어떠한 요구를 해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었습니다. 그러다 전화통화가 안 될 때는 부부간에 서로 이해하고 잘 지내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사돈 조상의 천도재도 올리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지금은 둘째 딸의 가정도 편안하게 돌아갑니다.
지난 3월 5일에는 포항 셋째딸집에서 저녁을 먹고 딸과 함께 바닷가를 걸어가면서 딸에게 “바다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라. 그리고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보고 우리 사람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물이 잔잔하게 있다가 파도가 크게 일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함께 얘기를 나누며 바닷가를 걸어보는 좋은 시간도 가졌습니다. “좋은 것도 잠시 나쁜 것도 잠깐이다. 사는 것이 다 그러하니까 욕심 많이 내지 말고 살아라.” 하니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2년 후에는 단편영화 만들어 대해스님과 외국 갈 것이라고 자랑했습니다. 딸이 경비를 묻기에 내가 모아서 간다고 하니 딸은 자기가 한 달에 10만원씩 2년 동안 모아서 엄마 외국 보내 준다고 합니다.
티끌모아 태산
참으로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생각을 내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모든 결과가 주어지니 말입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십원이 백원 되고, 백원이 천원 되고 천원이 만원이 됩니다. 혹시 불사에 동참을 하고 싶은데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 못한다고 생각 하시는 분이 계시면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못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될까하고 의문을 품어 보라고 말입니다.
어떠한 것도 안 된다, 된다 하는 것 없이 한 생각 내면 다 이루어지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멋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말하는 나는 우주의 주인처럼 나도 우주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청정생활불사운동을 하면서 사물이든 어떠한 것을 보든지 저의 마음에 비춰보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국제선원 불사가 이루어지는 만큼 저의 마음 불사도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제선원이 전 세계 우주로 커지는 대작 불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