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동성, 20.주체성, 26.안전성, 40.완전성
추석체험담
추석이다.
추석이 나는 여전히 좋다고 했다. 휴식시간이라고도 했다.
휴가 첫날부터 담이 걸렸다. 남편은 할아버지댁 장사를 도우러 가고 어머니와 둘이서 음식준비를 했다. 전날 늦게 자고 오른쪽 등이 담도 걸린 터라 쉬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선원식으로 재사를 모시긴 하지만 어머니는 몇 가지만 빼고 모든 음식을 다 하신다. 나물도 기본이 일곱 가지다. 어머니가 목욕하러 간 사이 낮잠을 잤다. 1시간 정도 자고나니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피곤하니까 짜증이 났다. 왜 어머니는 선원식으로 재사를 모시면서 이렇게 음식은 다 하시는가?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평상시에도 잘 못하는데 명절에라도 열심히 하자.’ 이런 마음도 들었다가 명절을 나는 너무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명절엔 이 정도의 일은 당연한 거 아닌가 이런 각오가 없었다는 것이다. 계획 없이 맞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잘 몰랐다. 그냥 내 편한 대로 했고, 남편도 옆에서 같이 거들고. 이번처럼 어머니 옆에 딱 붙어서 한 건 처음인 것 같다. 내가 시비만 하고 있었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잘 몰랐던 것이다.
추석 아침 어머니께 ‘어머니 왜 이렇게 일이 많아요. 어제도 하루 종일 아침에도 일어나 이러고 있고.’
어머니: 야가 추석인데 이 정도도 안 하나. 니는 그래도 어제 낮잠도 잤다 아이가. 추석에 낮잠 자는 사람이 어딨노.
그래. 내 위치를 생각해야지. 한 집안의 며느리가 추석에 편할라고 생각하면 되나. 어떻게 하면 산 조상 죽은 조상 모두 한 자리 해서 풍요로운 추석을 보낼까를 생각해야지.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차례를 모시고 할아버지 댁에 갔다. 예전엔 할아버지댁에 안 가면 친정에 일찍 갈 수 있는데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게 싫다는 생각을 했다. 내 편한 대로 안 해준다고 어머니는 융통성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명절날 어른께 인사를 드리는 건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잠깐 뵙고 어른들 다 일하고 계시는데 나만 친정 간다고 나선다. 문득 우리도 손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나도 여기서 손님이지. 내가 뭐 대단하게 한다고 할아버지댁에 가는 걸 귀찮아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처럼 앉아서 새우를 구워먹고, 어머니께서 싸주시는 새우를 감사하게 들고 친정으로 갔다. 손님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했다.
친정에 도착하니 평소 같으면 있을 남자 형제들이 아무도 없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어머니께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니 오빠네가 집에 오기 전부터 둘이 싸워서 집에 와서 서로 말도 하지 않았고 어젯밤에는 올케가 차에서 자고 그 상황을 모른 엄마와 작은 올케는 사람 없다고 아침부터 찾았다고 한다. 오빠를 깨워 상황을 안 엄마는 작은 올케한테 한번 살펴보라고 하고 확인을 했다고 하신다. 많이 놀랐다고 하신다. 제사 모시고 나더니 오빠가 이대로 그냥 있으면 오는 사람도 불편하니 집에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래 너희 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니 니가 해결해라.’하고 보내셨단다.
어떤 일도 잘못된 게 없다고 여름에 오빠랑 오해가 생겨 3달여간 서로 연락도 못하고 힘들어하셨는데 이 일로 인해 엄마는 오빠에게 기대고 있었던 마음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대처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엄마를 변하게 했을까? 그렇다고 오빠를 원망하지도 않으셨다. 엄마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스스로를 탓하지 않으니까 오빠에 대해서도 올케한테도 욕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면서 여여하게 사위와 딸들을 맞으셨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흐뭇했다. 참 씩씩해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엄마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은 아신 것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시니까 우리도 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고집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들내외가 그렇게 가셔서 속이 편하지는 않으셨을 게다. 그렇지만 그 상태로 그것을 잡으려고 하지도 않으셨다.
그동안 나는 엄마를 믿지 못했다. 엄마가 하는 모습만 보고 엄마를 탓하는 마음이 컸다. 오빠에 대해 원망의 말씀을 하실 때도 그냥 들었고, 어떨 때는 나도 화가 나서 몇 마디 하긴 했지만 누구에게나 생명법이 있기에 스스로를 지킬 줄 안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 내려놓았다.
이런 엄마를 통해 나도 배운 게 있다. 비바람에도 부동할 수 있는 법을 말이다.
첫 번째는 내 삶의 주인은 나임을 아는 것. 내가 만들어나간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식 때문에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를 부동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나 자신임을 알 때 어떤 선택을 할지 그 선택 또한 스스로 해내는 것이다. -주체성
그 상황을 완전하게 보는 마음이다. 완전하게 보지 못한다면 틀렸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어떤 그림판을 만들어 억지로 거기에 맞춰 채울려고 하지 않는다. -완전성
어떤 상태에서도 나는 안전하다. 내 안에 생명법이 있으니까. 변하는데 집착하지 않는 게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안전성
엄마를 보면서 하면 되는구나. 아들에게서 절대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엄마도 저렇게 바뀌셨으니까 말이다. 사실 엄마의 모습에 많이 놀라웠다. 더 정신을 차려 나를 다잡아 공부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추석에는 시댁에서의 나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보며 아직 어머니가 계시긴 하지만 이 집의 주인으로 일을 계획하고 동참하는 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며 친정어머니를 통해서는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될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모든 것의 주인으로 살아갈 때 내가 나를 자유자재로 운용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