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가르침의 중요성

책이 있어도 그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 하면 잘 못 가르칩니다. 그렇게 잘 못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이 경지를 가보지 않으면 자기 식대로 가르치게 되어있어요. 정말로 둘이 아니게 이 경과 이 경전의 뜻과 실제 부처님의 뜻과 둘이 아니게 뜻을 전달을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는 수가 있죠. 자기가 아까 말한 공을, 공과 색이 둘이 아닌데 자기가 그 안정된 공을 딱 거머쥐면 그게 그것인줄 아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그걸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경전 구절을 보아도 이게 무슨 뜻인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 자기 나름대로 가르쳐버리거나 아니면 그냥 읽고 말아버리거나 그러겠죠. 책들도 보면 번역한 사람에 따라 다 다릅니다. 그래서 누가 번역을 했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법문의 뜻을 알 수 없도록 잘 못 번역을 해버리면 다른 말이 나가버려요. 그러면 부처님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죠. 저도 외국에서 보니까 그런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아무나 통역시켜서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중략)

보여 지는 것은 통역하기 쉬워요. 그런데 이건 안 보이는 것이거든요. 안 보이는 법이라서 자기가 체득하지 못 하면은 뭔지 몰라요. 그러니까 그 속에 있는, 내면에 있는 말을 할 때는 못 알아듣습니다. 그러면은 자기식대로 자기 마음대로 해버려요. 그러면 그걸 듣는 사람은 엉뚱한 것을 듣게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한테 한국말로 할 때도 똑같습니다. 이거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자기가 이 말씀을 어떻게 알고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자기가 아는 대로 그대로 전달해버립니다. 그러니까 그거는 참 중요하죠. 엉뚱하게 배울려면 차라리 혼자 하는게 나아요. 그런 경우가 많이 있어요. 경전의 그 뜻을 잘 못 이해해서, 그래서 종교가 이렇게 달라지죠. 잘 못 가르치죠. ‘이렇다’라고 단정지어 가르치면 그걸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해나가잖아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많이 있잖아요. 그래서 바른 가르침, 바른 가르침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2006.9.22 경전법회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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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자
1년전에 하신 법문입니다만
근래 금강경 교정.편집작업을 하면서 참고삼아 다른 번역본들과 해설서들을 보게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새삼 이 법문에서 하신 말씀이 많이 와 닿습니다.
금강경은 대부분 쉬운 한자와 쉬운 문장구조로 되어있어서 시중에 나와있는 번역들이
대체로 큰 오류는 없는 듯하며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물론 오류가 아주 없다는 뜻은 아니고 대체로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경전에 대한 해설들이 너무나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도저히 해설이라고 할 수 없는 내용도 있고 너무나 엉뚱한 해설도 많았습니다.
그런 해설로는 도저히 가르침의 핵심을 간파할 수 없고
어떻게 실천을 해야 할 것인지 알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엉뚱하게 배울려면 차라리 혼자 하는게 낫다는 선원장스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번역에 큰 오류가 없어도 그 뜻이 너무나 미묘하고 심오해서 그런지
가르침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쓰여진 글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제가 많이 찾아보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바로 이거야"하는 생각이 들 만큼 와 닿는 해설서는 못본 것 같습니다.
누군가 눈 뜬 사람이 "그건 이런 뜻이야"하고 일러 주지 않는다면
올바르게 가르침의 핵심을 파악하고 실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마 선원장스님의 금강경법회에 참석해 보신 분들은 이 말에 크게 공감하실 것입니다.

육조단경 같은 경우에는 시중의 책들을 보면, 해설은 고사하고 번역 자체의 오류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핵심적인 법문이나 중요한 게송 부분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엉터리 번역이 등장합니다.
그런 부분들은 대부분 깨우치지 않고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잘 모르면 문자 그대로 직역이라도 해 놓으면 문제가 좀 덜 할텐데
직역을 해도 번역자가 스스로 이해가 안되다 보니까 자기차원대로 자기식의 의역을 해서
번역을 해놓아 버리니 전혀 엉뚱한 번역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부분들이 핵심적인 아주 중요한 법문이나 게송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잘 못 번역된 책을 가지고는 아무리 수행을 해도 바른 길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번역도 그러하니 해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직역이 된 번역본이 있다면 좀 어렵더라도 번역문만 보고 시중의 해설은 차라리 안보는 게
공부하는 데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나라 말로 번역된 육조단경이 있었는데 거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요한 부분 마다 전혀 엉뚱한 번역이 되어있는 것을 선원장스님께서 여러 곳 지적해주셨습니다.
잘못된 번역서로는 아무리 열심히 읽고 뜻을 알아내려고 해도 당연히 알아낼 수 없을 것이고
시간과 노력만 엉뚱한 곳에 허비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바른 가르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경전은 우주를 한손에 쥐게하는 비밀문서'라고 하시면서
그 뜻을 해독해야만 한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그 뜻을 모르고 있을 때는 비밀문서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토록 수없이 읽히는 금강경인데도 스님께서 직접 금강경을 설하시는 걸 듣고서야
"아! 그게 그 뜻이었구나!"하며 놀라고 감탄하는 많은 모습들을 보면 말입니다.

요즘은 스님께 일단 금강경과 육조단경만이라도 해설서를 좀 집필해 주실 것을
간청을 드리고 있습니다.
두가지 다 일단 번역은 해주셨지만 아직 경전의 그 깊은 뜻을 간파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경전이라는 것이 역시나 비밀문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살아있는 스승의 존재가 얼마나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지 모릅니다.
최상승의 가르침이 경전에 있어도 그 깊은 뜻을 풀어서 해설해주지 않으면
그 뜻을 스스로 알아서 실천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니 말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경전의 뜻을 해독해내어 경전의 뜻과 자기 내면과
둘 아니게 딱 맞아떨어졌을 때, 그 때가 바로 깨달음의 순간이다" 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에게도 바른 가르침을 통하여
언젠가 그런 순간이 도래하기를 발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