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안의 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를 추측하지 말라

  • daehaesa
  • 조회 15506
  • 2007.06.22 12:58

자기의 참나를 찾는데 참나가 아니면 결국은 참나를 증명을 못해요.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돼요? 참나를 증명하려면 내가 참나가 되어야 되겠지요. 그래서 차안에서 피안의 세계를 갈려면 차안에서는 피안의 세계에 절대 못갑니다. 차안의 세계에서는 피안의 세계를 증명을 못합니다. 알 수가 없어요. 감지도 못해요. 피안의 세계에 들어가야, 그래야 증명 받는 거죠.

가기 전에 막 감지하려고 하고 ‘피안의 세계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럴까? 피안의 세계는 그거라고 했는데...’ 아니면 ‘도를 깨우친 사람은 이러이러 하다고 했는데...’ ‘저 사람은 도를 깨우친 것 같다’ 혹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지금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데 그러면 그게 깨우친 건가?’ 하는 그런 경우도 있지요? 그런데 ‘이게 피안의 세계인가?’ 하면 피안의 세계 아니에요. 왜냐하면 자기가 ‘...인가?’ 그러면 모르고 있다는 얘기지요. 안 들어간 것이지요. 말하고 행위하고 똑같습니다.

이게 딱 들어가면, 이때까지 자기가 몰랐던 피안의 세계에 딱 들어가고 나면 딱 알지요. 아는데 자기가 들어가기 전에 어떠한 ‘이러한 것이 피안의 세계일 거야’ 그러면 그러한 환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런 환상을 가지고 그건 줄 알고 그런 사람들도 더러 있어요. 그러니까 차라리 모르면 괜찮은데 책으로 보고 듣고 읽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그걸 측정하려고 그래요.

그러니 맨날 죽은 새만 잡는 것이지요. ‘산 새’를 잡아야 하는데 죽은 새를 잡는 거라. 이미 그게 그건가 하면 그게 이미 아닌 거예요. 이미 그게 성품 자리인가 하면, 이미 공(空)인가 하면 색(色)으로 이미 화해있단 얘기지요. 색으로 화한 것은 죽은 거고, 공이 살아 있는 거죠. 산 새를 잡아야 하는데 항상 잡았더니 죽은 새만 잡았더라 그런 얘기 있잖아요. 산 새 잡아봤어요? 산 채로 잡아야지. 잡아놓으면 죽어버리는 거라.

 

 

(2007.4.6 금요법회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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