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왜 오셨는가? (2006년 초파일 법문)

안녕하세요? 

오늘 좋은 날이죠? 오늘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왜 오셨을까요? 부처님께서는 오시든지 안 오시든지 이 우주 전체에 항상 두루 하시죠. 항상 계시죠. 그런데 왜 부처님께서 오셨느냐? 오셨다는 것은 몸을, 우리 몸을 받고 나투셨느냐는 얘기죠. 부처님께서는, 원래 진리라고 하는 것이 온 우주 법계에 두루 하지만 그 법을 몰라서 사람들이 제대로 못살아가니까 그 법을 가르쳐 주시려고 오셨죠.

 

진리라고 하면은 사람 살아가는, 생명이 살아가는 법이죠. 생명이 살아가는 법이, 색(色)이 공(空)이고 공(空)이 색(色)이라. 색깔이 공이고 공이 또 색이라고 그러니까 보이지가 않아요. 여러분들, 여러분들 마음을 가만히 보면은 여러분 마음 보입니까? 안보이죠? 보이지도 않고 색깔도 없고 크기도 없고 형체가 없어서 아무 그런 게 붙지가 않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사람들이 잘 몰라요, 자기 근본 불성을. 본래 다 가지고 거기서 다 하고 있는데 알지를 못해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먼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가지고 먼저 많은 연구를 해서 깨우쳐서 여러분들께 가르쳐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시니까 우리가 알기가 좀 쉽죠. 안 그래요? '둘이 아니다'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다' 해도 사실은 그 말도 부처님께서 말씀을 안 하셨으면 모르죠. 전부다 낱개로 이렇게 벌어져 있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전부 전체가 둘이 아니고 자기 몸이다' 그러는데 그거를 말씀하시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죠. 아무도 모르니까 서로 자기가 자기 몸을 치고받고 싸우고 뜯어 먹고 막 아무렇게나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다. 다 자기 몸이다. 하나의 진리에서 하나에서 전부 나투었다. 그러니까 모두가 다 화합해서 살고 또 어떻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 가는가 그것을 다 말씀하셔가지고 그렇게 살라고, 그래서 부처님께서 몸으로 나투신 것이죠. 이해가 됩니까?

 

처음에 이 세상이 존재할 때는 태초에 생명체라고 하는 것은 있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된다고 하는 법이나 이런 것들은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죠. 그냥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면서 많이 크게 움직이고 크게 움직이고 하면서 우리가 그 불성을 알아낸 거예요. 사실은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알아낸 거예요. 도대체 보이지가 않으니까 자기가 막 다 해놓고도 어떻게 되어지는지 이것을 모르는 것이죠, 안보이니까.

 

그런데 그거를 거꾸로 마음 안으로 들어가 가지고 마음 안에서 깨우쳐가지고 알아내봤더니, 처음에 지수화풍이 뭉쳐져 가지고 생명이라고 생겨났는데 그 생명이 어떠한 법이나 이런 건 아무 것도 없고 나름대로 계발을 한 거예요, 나름대로. 정해진 법이 있는 게 아니고 나름대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하다가 아니면 또 바꾸어 보고 또 그렇게 하다가 아니면 또 바꾸어 보고.... 우리 사람들이 살아가면서도 공산주의네 민주주의네 이런 것들도 만들었다가 아니면 또 바꿔 보고 아니면 또 바꿔 보고 이러 듯이 계속 바꿔가면서 이렇게 바꾼 거예요. 그러다가 보니까 그 작은 미생물서 부터 지금 사람까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사람이라는 거 되게 신기하죠? 안신기해요? 말도 하죠, 듣죠, 생각하죠, 또 이상한 것들 다 만들어내죠, 오만 것 다 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거 다 한 거 아니예요. 꿈틀 꿈틀 조금씩 움직이다가 인제는 전 우주 전체, 지금은 마음으로써 우주 오만데 까지 다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자꾸 하고 하고 하다가 보니까 '아! 내 안에 있는 불성이라고 하는 그 본래 능력은 끝도 갓도 없구나. 정말 대단하구나.' 이런 것들을 나중에 깨우친 거예요. 깨우쳤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죠.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자성(自性)은 전부다 똑같습니다. 전부 똑 같은데 그것은 체(體)가 없습니다. 체(體)가 없으니까 앞도 없고 뒤도 없고 크기도 없고,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사는 것도 없고, 그렇게 그 본체가 본래 그래요. 본래 그런데 그것이 그러하기 때문에 나툴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게 공(空)이죠. 공이 색깔로 이렇게 나툽니다.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나투어요. 그렇게 나툴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나투어서 사니까 각자마다 전부다 둘이 아니게 자기의 나툼이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남이 아니라 자기라. 자기로 전부 연결이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자기는 자기대로 계속 창조해서 원하는 대로 만들어서 살고 또 남과도 전부 남이 아니니까 남이 만들어 놓은 것도 전부다 통신을 해서 살아라. 자유롭게 공생 공심 공용 공체로써 자유롭게 살아라. 너희들한테는 무한한 능력이 본래 다 있고 이 우주 법계가 전부 너와 둘이 아니다. 전부 너희들이다.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통신해서 통신하려면 내가 원하는,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한 것을 가진 사람하고 통신해서 갖다 빌려다 쓰고, 또 내가 또 다른 원하는 것을 창조하고 싶으면 또 그 마음 안에다 관해가지고 만들어서 쓰고, 어떤 것이든지 다 할 수 있으니까 남한테 빌어먹지 말고, 내가 주인이 되어가지고 주체성 있게 그렇게 살아라, 그런 얘기였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가시면서 법등명, 자등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법을 등불삼고 자기 자성을 등불삼아서 가라 하신 것이죠. 우리가 배우는 부처님 법은 부처님께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하는 그런 게 아니고 전부 우리 진리를, 우리가 살아가는 법(法)을 터득을 해가지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힘으로 살아라고 하는 거예요. 그 법이 있는데 왜 남한테 얻어먹느냐, 남한테 얻어먹지 말고 너희가 너희 안에 무한 무궁한 능력이 다 있으니까 그 방법을 터득을 해가지고 살아라 그런 얘기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이런 공부를 하는 것은 부처님법이 어디에 국한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법등명, 그 법을 받아가지고 우리는 사는 거예요. 법을 받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법으로서 같은 법이니까. 만약에 부처님 법은 크고 우리 법은 작다면 우리가 배울 필요가 한개도 없죠. 부처님 법이 크다면 우리 법이 큰 거예요. 왜냐 하면 똑 같은 거니까. 똑 같은 것을 부처님은 알아낸 거고 우리는 못 알아낸 거고, 그러니까 알아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이 우주에 모든 물질이 내 거예요. 여러분들 거라고요. 쓰고 놓고 쓰고 놓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많은 사람들한테도 마음으로 둘이 아니게 하면은 전부다 도와줍니다. 그게 마음으로 연결이 되어있거든요, 마음 속 깊숙이. 그런데 자기를 따로 놓고 자기와 따로따로 하려면 안도와 줍니다. 저도 이런 법당이나 이런 것을 하려고 해서 된 것도 아니예요. 하려고 한다고 해서, 아무데나 그냥 턱 세운다고 사람들이 옵니까? 그게 아니예요. 다 해놓은 게 있으니까 그 나름대로의 통로를 통해서 이렇게 이루게 되는 것이죠.

 

저는 옛날에 그랬어요. 공부한 과정 하면 무진장 많지만 한번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럼 과연 부처님이 크고 크신데 부처님이 되려면 과연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큰스님 법문에 그런 말씀 나오데요. 호랑이가 사람이 되려고 하니까 먼저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고, 먼저 사람의 모습을 그려가지고 사람으로 나왔다고. 또 사람으로 나오고 보니까 이건 또 모습은 사람인데 마음 쓰는 것은 꼭 호랑이 마음을 쓰거든요. 잡아먹고 할퀴고 호랑이 같은 짓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또 다시 마음을 바꿨다고 그러죠.

 

그러듯이 우리가 부처님이 되려고 하면, 사실은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 없고 자기 차원이나 이런 것이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죠. 근데 계발을 하는 거죠, 계발. 자꾸 계발해 나가는데, 부처님을 닮으려면, 부처님은 무진장히 크고 크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시고 모든 것을 다 베풀어 주시고 다 하시는데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니까 처음에는 호랑이 모습을 복사를 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을 복사를 했다. 그러면은 나도 부처님 마음을 복사를 하면 되겠네. 부처님 마음을 그리든지 만들든지 하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처님 마음을 어떻게 그리겠습니까? 어디서 그립니까?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이 마음 안에서 하죠? 마음 안에서. 부처님은 도대체 어떤 마음을 쓰고 계시는가? 남이 나한테 조금 기분 나쁜 소리를 하면 한 대 탁 쥐어박는 것이 부처님 마음인가? 쥐어박아도 사랑하는 것이 부처님 마음인가?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마음씨를 가지고 사시는가? 그렇게 생각을 했죠. 그러면은 사실은 뭐 그렇다고 해서 막 그렇게 한건 아닌데 그러한 생각이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쭉 하게 하거든요. 그래서 부처님 마음 어떻게 쓰는가 보고, 그러면 부처님 마음은 어디서 찾겠습니까? 부처님 마음 찾으려고 하니까 현실에 나투신 부처님은 지금 큰스님이시니까 거기 법문 비디오나 테이프 다 나오잖아요? 그거 보고 복사하면 되는 거죠. 어디 딴데서 복사합니까. 그것 보고 내 마음 쓰는 거 보고, 법등명 자등명 그게 법이잖아요, 법. 법을 등불 삼아서 자기 자신을 등불삼아서 묻고 대답하고 묻고 대답하고 하면은 다 나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되시려고 하면은 우리가 그 마음씀이를 잘 써야 됩니다.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참 무서워요. 생각하는 대로 막 돌아가 버려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잘 지켜보고 내 속에서 어떤 마음이 나고 있는가, 그래서 어떤 마음이 나올 때 이거는 부처님 마음인가? 아니면 중생의 마음인가? '너' '나'를 가르는 마음인가? '너' '나'를 합하는 마음인가? 이런 마음을 항상 보고 부처님 마음 쪽으로 바꾸어 버리면은, 계속 바꾸어 나가면은, 그러면은 뭐가 되겠어요? 부처님이 되겠죠? 그걸 굳이 법문을 안 본다 하더라도 생각해보면 알아요. 자기가 마음 쓰면서 이것이 부처님 마음인가? "아니다" 속에서 아니면 '아니다' 그래요. 맞으면은 "응, 맞다. 그렇게 써야겠구나." 그럽니다. 그래서 그렇게 자꾸 그런 부처님 마음을 쓰고 공부를 하고 나를 내려놓고 나를 없애고 이렇게 이렇게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 그 진리를 알게 되죠. 진짜 부처님의 참 뜻을 알게 되죠.

 

그러면은 해인(海印)을 누가 해줍니까? 남이 누가 도장 찍어주고 남이 누가 "당신 깨달았어요." 해주고 남이 누가 해주는 거 아니예요. 자기 속에서 압니다. 남이 해 주는 것은 해 주어도 소용이 없어요, 자기가 모른다면은. 왜냐? 이거는 우리 마음법은 실제예요, 실제. 내가 알아가지고 내가 활용을 해가지고 내가 써먹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남이 당신 깨달았다 어쨌다 해줘도 내가 쓸 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 인가(認可)해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아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저도 이 공부하면서 조금이라도 뭐가 미심쩍은 게 있으면 계속 물으면서 파서 알아냈어요. 다른데서 알아낸 것이 아니고 이해가 안 되면은 여기다가 물어서 알아냈습니다. '물질하고 마음하고 어떻게 같은가?' '어떻게 둘이 아닌가?' '색(色)하고 공(空)하고 어떻게 둘이 아닌가?' 이 이해가 안 되는 얘기들이 많잖아요? 그러면 그것을 풀어야 되잖아요? 분명히 큰스님께서 맞으니까 이것을 말씀하셨을 텐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맞지 않는 얘기이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거를 바깥에 보이는 세계 쪽으로 이렇게 봐가지고 알려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알 수가 없어요. 어디로 들어가야 되느냐? 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돼요. 마음속으로 들어 가가지고 스스로 자문자답 합니다. '이게 이치가 어떻게 된거냐?' '이해가 안된다, 이게 왜 그렇게 되는 것인가....?' 그렇게 안으로 굴립니다. 안으로 굴리다 보면 다 풀립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전부 잡아서 자기 안에다 묻습니다.

 

요즘 대학생들 참 얼마나 좋습니까. 한참 정신도 팔팔하고 생각들도 건전하고. 그리고 고정된 관념들도 많지 않고. 그럴 때 진짜 이 세상사는 이치나 이런 것들을 전부 마음 안으로 관(觀)해가지고 생각해서 알아내고 서로 토론하고, 또 알아내고 토론하고 그러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우리 대학생들을 보니까 그 생각이 나네요. 그 많은 대학생들이 정말로 대학에서 철학을 논하고 뭘 논하고 하면은 과연 서로서로 그러한 것을 서로 모르는 것을 묻고 알아내고 그러한 대학생들이 되고 있는지.... 대학생이라고 하는 것은 큰 학생이잖아요? 이제는 두루두루 원융회통 사상이라고 할까? 두루두루 모든 것을 다 알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위치에 있는 거죠.

 

그래서 참 사실은 할일이 참 많죠. 우리 대학생들한테도 정말로 그렇게 자기 안에 있는 그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들이고 내고 하는 생산처, 생산처이자 소멸처,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는 그 자리가 여러분 안에 있으니까 그 쪽으로 묻고 대답하고 바깥에 있는 책이나 이런 것은 참고예요, 참고. 왜냐 하면은 마음들이 써놓은 것이니까 자기가 중심이 돼가지고 참고로써 이렇게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힘이 생기고 커지겠습니까. 그래서 그러한 모든 학생들이 마음의 중심이 딱 서가지고 나라의 일을 토론을 하고, 어떻게 하면 나라를 좋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제는 지구를 좋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연구를 한다면은 우리 지구는 영원히 소멸되지 않으면서 아주 멋있고 아름답고 푸른 지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안그래요?

 

지금 여러분들 제가 이렇게 어제도 얘기했지만,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만든다, 지구가 영원불멸할 수 있는, 영원히, 여러분들 각자가 영원불멸한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불멸한 존재가 지구 안에서 다 살고 지구를, 여러분들이 가꾸잖아요. 산도 자르고 만들고 공장도 만들고 하는 사람이 다 누구예요? 여러분들이잖아요. 여러분들이 잘못하면은, 생각 잘못하면은 지구를 완전히 다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여러분들이 생각을 잘 하면은 지구를 엄청나게 좋게 만들 수도 있어요. 수명을 길게 할 수도 있고 수명을 짧게 할 수도 있고 여러분한테 달렸어요. 모르고 무지하면은 아무렇게나  해버리거든요, 막 심장도 잘라 버리고. 지구의 심장도 잘라 버리고 이것저것 다 잘라버리고 그러고 나면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우리 같이 그냥 무너져버리는 거죠. 같이 허공에 그냥 벙벙벙벙 떠야 돼요.(웃음) 이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 전부다 지구하고도 연관되어있고 전체 연관되어있으면서도 모두가 둘이 아니고 거기서 모든 것을 다 우리가 연구하고 할 수 있으니까 인제는 그런 차원에서 연구도 하고 살고 그래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은 오늘만 오신 것이 아니라 항상 와서 계십니다. 항상 계시지만 날로 그렇게 정해놓고 우리가 또 그렇게 부처님 오신 날을 알아서 우리 자성을 밝혀가지고 우리도 영원히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청정무구하면서, 청정무구한 그 마음으로 영원히 살고, 또한 자유롭게 이 세계를 만들어가지고, 또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만들고 싶은 대로 다 만들어서 살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되게 하려고 부처님께서 나오셔가지고 사십 구년 동안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만 설하신 것이 아니라 계속 바꿔서 나투었죠. 그래서 지금도 부처님이 계시고 인제 여러분들 중에서 또 부처님으로 나투셔가지고 일을 하겠죠. 저도 제가 하다 말면 여러분들이 할 것이고, 여러분들이 하다가 말면 그 다음 세대가 할 것이고 그러면서 우리 지구를 자꾸, 우리 이 별을 자꾸 자꾸 바꾸어가고 또한 어제도 말했지만 우리 별 뿐만 아니라 다른 별도 우리가 가꾸어 나갈 수 있어요. 사람 하나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 법을 알면은 이 우주 전체를 관장합니다. 전체를 관장하고 생각으로 사람들을 시켜가지고 그런 것을 다 만들어 나갈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러한 마음으로 항상 부처님 오신 날이 되시고, 남한테 의지하지 말고 항상 여러분 내면에 자성을 계발을 해가지고 항상 그쪽으로 묻고 대답하고 묻고 대답하고 하면서 자유롭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5월 5일 부처님 오신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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