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따지고 '선'인지 따지고 머리에서는 끝없이 재고
판단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런 것으로 인해 머리에서는 혼란을 일으키고...
그런 것은 없었다.단지 내가 어느 편에 서서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생겨날 뿐이고, 맞고 틀린 것이
생기는 것이다.이쪽에서만 생각하면 이쪽이 옳고,저쪽에서만
보면 저쪽이 옳고, 어느 쪽이 옳은지 분간이 안갈때는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의 원인은 판단하는 자신에게 있었다.
내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때는 어디를 가든지 갈등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혼란의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
화장실에서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갈등을 보며 나름대로 힘이 들었었다.
그래,오늘 자성불이 혼란과 갈등의 세상에서 나를 해탈시켜
주는구나.
시골에서 사과를 따면서 배운 게 있다.
큰 것만 땄는데 누군가 따고 지나간 자리를 모르고 가서 보면
똑같이 큰 것이 있었다. 구분이 가지 않았다. 큰거라고 따서 보면
처음에 딴 것들보다 작았다. 더 작은 것들과 있다 보니 작은 것이
큰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크다,작다라는 기준이 본래는 없는 거였다.그것은 단지 비교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좋다,나쁘다라는 것은 있을까? 그것도 비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많이 쓰는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모두가 다른 경험과 환경
에서 비롯된 스스로가 만들어 둔 기준에서 판단을 하는 것이다.
기준이 본래가 없다는걸 안다면 좋다,나쁘다,크다,작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상황에 그게 적당하다라는 말이 나올 뿐이다.
상황따라 취사 선택을 할 뿐이다.
이렇게 하나씩 정리를 한다.
부처님전에 삼배를 하는 것도,보시를 하는 것도,공양을 짓는것도
청소를 하는 것도,도반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자신에게
올리는 지극한 정성이었다.
둘로 보지 않는 그 행이야말로 자신에게 올리는 눈물겨운 정성
이었다.모두가 은혜라네,모두가 빛이라네,우리도 부처님같이...
그 구절이 입가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