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란....
우리의 부모님들은 예전에 뙤약볕 아래서 아주 힘들게 손발을 움직여 일을 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머리만 써서 일하는 것을 매우 부러워 하였다. 그래서 자식들은 죽어라 공부를 시켰다. 공부만 하면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부해서 도시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자식들은 자기의 자식들에게 더욱 많은 공부를 시킨다. 아이가 태어나서 말문만 트이면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아장아장 걸으면 벌써 학원을 알아보러 다닌다. 그리고 이어서 피아노, 태권도, 미술학원 까지 행여나 뒤질세라 잠시도 아이를 쉬게하지 않는다.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도 이 학원 저 학원 다니느라 어깨가 무겁고 부모는 부모대로 그 뒷바라지를 하느라 어깨가 무겁다.
즐겁지 않은 일을 부모님은 강요하게 되고 또 그래야 잘 살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이가 왜 힘들어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회가 그러니까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고 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회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놓고 또 누가 시키는 것처럼 따라서 하고 있습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어느 농부의 이야기이다. 농약을 쓰는 논(관행논)의 벼 포기와 쓰지 않는 논(유기농)의 벼 포기를 뽑아서 비교해 보자. 관행논의 벼 포기는 줄기가 가늘고 뿌리도 엉성하고 짧다. 하지만 유기농의 벼 포기는 줄기가 튼실하고 뿌리도 무성하고 길었다. 관행논의 벼는 키우는 사람이(농부) 미리 알아서 비료를 주니까 스스로 애써 양분을 찾을 필요가 없으므로 줄기나 뿌리를 튼실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기농의 벼는 스스로 알아서 양분을 흡수하느라 열심히 줄기를 사용하니까 줄기가 튼튼하게 되고 뿌리도 땅속 이리저리 양분을 찾아내느라 뿌리를 길고 넓게 키운다.
그리고 벼 포기만 보호하려고 농약을 잔뜩 뿌려 다른 생명을 죽이는 논은 벼밖에 없어서 논바닥이 딱딱하고 거칠다. 하지만 스스로 자라게 하는 논은 지렁이나 여러 수생 동물들이 땅을 파헤쳐 부드럽게 하고 그 생물들의 분비물이 거름이 되어 벼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나만 살려고 하지 않으니 같이 어우러져 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자체가 서로를 돕고 서로를 살린다.
대학생들이 옷을 사러 옷가게에 가면 주인이 옷을 살려고 하는 당사자 보다 옆의 친구를 부추겨서 친구가 이쁘다고 한마디 하게 하면 거의 그 옷을 산다고 한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데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많은 지식이 머리에 들어 있어도 내마음 대로 옷 하나도 사지 못하는 힘이라면 어디에 써먹을 것인가
이렇게 끌려 다니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알려면 내 안의 나한테 물어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내가 나하고 소통이 되어야 상대하고도 진짜로 소통이 되는 원리를 연구하여 알아내는 것이 수련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