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핑계를 대면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데 그 것이 자신에게 속는 것이다.
한 쪽을 놓으면 둘 다 얻을 수도 있다
‘고시 합격하고 나면 이성 사귀는 일이나 뭐나 다 하자’ 하면 다른 마음이 사라지고 일념으로 공부를 하듯이 깨우치고 보자 하면 (잡생각이) 다 사라진다.
습에 빠지면 못 헤어난다.
모두 입력된대로 살아간다.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게 입력이 되어 그렇게 돌아간다.
그래서 맹모삼천지교가 중요한 얘기다.
봉숭아 화분에서 2개의 종자를 넓고 큰 곳으로 옮겨 심었더니 무진장 커지더라. 환경이 그렇게 중요하다.
좋고 나쁜 것은 자기 생각이다.
생각만 바뀌면 다 달라진다.
아이를 어른과 같이 생각하고 어른과 대화하는 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외국어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얘기를 해야 한다. 그 외의 말은 외국어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일 뿐이다.
좋으려고 하면 딱 그만큼의 나쁜 것이 생긴다. 그래서 중용을 지키라고 한다.
중심이 없어 착한 것과 중심이 있고 힘이 있는데 봐주는 것과는 다르다
덩치가 큰 개가 있는데 작은 개가 올라타고 물고 해도 꿈쩍도 안하고 그냥 있더라. 과연 그 큰 개가 힘이 없어서 당하는 것인가?
자기가 둘로 보지 않고 자기가 법대로 실천 해야지 남을 가르치려고 하면 공부는 끝이다. 모든 법문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해라’는 것이다.
타인의 탓을 하면 대체 언제 공부 하려는 것인가!
남은 어떻다 하는 순간에 ‘나는 공부 못해요’ 하는 것이다.
‘내’가 사라지면 모두가 ‘나’이다
합리화 시키는 것이 바로 자기 공부 안된 것을 알리는 것이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지키는 것이 자기 할 일이다. 생명이 이어지는 이치이다.
내가 처신을 어떻게 하느냐는 내가 잘 생각해서 결정, 행동해야 한다.
남에게 용서 받고자 하지 말고 남을 모두 용서해줘야 한다. 모두가 모든 것을 다 보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이 나를 존경하고 안하고 한다.
존경 받고 안받고는 자기 하는대로다.
어떤 아이가 매사에 투정을 부리는데 아이에게 ‘투정하는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네가 커서 나중에 선생님이 되거나 그런 위치의 사람이 되면 너는 안그럴 것 같으냐?’라고 했더니 ‘그럴 것 같아요’ 하더라. ‘그럼 네가 지금 어떻게 해야하는가!’
상대가 어떻든 너와는 관계 없다.
네가 중요하다. 시비하다가는 너는 공부 안된다.
남아선호사상이 여성우위의 세상을 만든다
첫째 아이 또는 장남이라서 잘되라고 모든 신경을 쓰고 사사건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니까 그 아이는 자유롭게 생각을 하거나 스스로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둘째 또는 여자아이는 위에서 격는 것을 보고 눈치껏 스스로 알아서 하고 부모가 둘째까지는 제대로 신경을 못 쓰는 사이에 밑에 아이는 스스로 해나가는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여성우위의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씨앗을 들고 있으면 안된다.
씨앗은 심어야 싹이 난다. 무엇도 내려놔야 된다.
애를 낳아야 된다 안된다도 없다. 몽땅 쉬어야 한다
무엇이든 이렇게 되어야 된다는 것은 없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 마음이 편하면 어떤 일도 순리대로 풀린다. 몽땅 내려놔라.
마음을 편하게 가지지 않으면 몸의 생리적인 현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음이 편해야 밥도 맛있게 먹을 것이고 영양 섭취가 골고루 되어야 몸도 건강할 것 아닌가.
버려야 얻는다. 절대적으로! 마음이 보약이다.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생각을 많이 하거나 고민을 많이 하거나 허해지면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다.
소가 이슬을 먹으면 우유를 만들고, 독사가 이슬을 먹으면 독을 만든다.
물질이 내 몸을 어떻게 하는게 아니라 내가 밖의 물질을 바꾼다.
마음만 잘 다스리면 병도 없어진다.
정신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가장 좋다.
안해도 되는 고민은 버리고 꼭 해야만 하는 것만 해라
하루 일정을 짜는 것도 무엇을 언제 할 것인지 짚어 놓으면 자동으로 돌아간다.
안 해놓으면 속에서 하루종일 걱정만 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안하는 것이다.
한 철 살다 옷 벗을 때 되면 옷 벗고 입을 때 되면 입고 이런 저런 경험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지 않는 사람을 대단히 여기면서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 못하면 말려들어가서 힘들게 산다. 가령 키가 120cm인 사람은 내가 150cm만 되어도 좋을텐데 하고 스스로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그 것을 가지려고 하지만 과연 150cm인 사람이 그 것을 행복하다고 여기는가? 그렇지 않다.
자기가 모자란 것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다. 가진 사람은 그건 당연하다고 한다.
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완전하게 생각하고 나름대로 설계를 해서 신나게 살아간다면 모두가 그 사람을 부러워할 것이다.
스스로 모자라다고 하고, 허해서 다른 것을 바라보고 살면 골다공증과 같이 구멍이 생긴다.
욕심없이 차근차근 하다 보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하면서 하는 가운데 되어지고 더 많이 더 잘하게 된다.
밖에 가면 각자가 다 포장을 해서 살아가는데 서로서로 그 것을 모르고 진짜인 줄 알고 속는다.
자신이 포장을 하면서 살면 타인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내 것을 내려놔야 다른 것이 들어온다. 다 듣고 나면 파악이 되고 어떻게 해야할지 알게 된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0’으로 두고 일단 듣고 파악해서 하면 남의 마음을 알고 실제를 안다.
세상을 편하게 고지식하게 살아간 사람은 세상을 모른다.
이런 저런 것을 많이 격다 보면 진짜를 알게 된다.
색끼리 소통을 하려 하면 안된다.
내면으로 소통하고, 먼저 내가 알아내서 이해하고 소통해야 소통이 된다.
자기 자신을 봐가면서 대화를 하고 처리를 해야 한다.
자신이 옳은 생각, 옳은 말을 하고 있는지 봐가면서 해라
마음은 다 똑같고 모양은 다르다. 내가 운전할 줄 알면 남의 차도 운전을 다 할 수 있다.
나라면 어떨 것인가? 하면 해결책이 다 나온다.
절대로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나름대로 잘하려고 한다.
존경받는 사람은 항상 자기가 죽어서 잘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올려 놓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올라가 있는 그 모습을 보고 그렇게 올라가려고 하는데 절대 올라가지 못한다. 내가 낮추면 상대가 좋아한다. 거꾸로다.
남녀 관계에서도 거꾸로 보채다가 싸움만 나고 도망간다.
사랑과 원수는 둘이 아니다.
사랑은 순간의 마음이고 변한다.
진정한 마음으로 오고 가야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