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 맺혀 바다로

  • 현선
  • 조회 18773
  • 2009.02.14 12:01

이슬이 맺혀 바다로

황룡회 현선 오재호

와장창 쿵탕, 쨍그랑

“못 살아 못 살아, 내가 못 살아”

월암 보살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신호의 달콤한 부부애는 2년도 안 돼 원수로 변했다.

원수 같은 남편, 친구 좋아 밖으로 밖으로,

술과 벗을 삼으니 집안 꼴 은 황폐해져만 간다.

딸 아이 말문 열고 재롱이 한창 귀여운데 남편 하는 짓 이 너무 못마땅했다.

아이 바라보며 살자고 스스로 위로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지만 허구한 날 술주정,

그날도 술 먹고 들어온 남편 앞에 잔소리하고 생활비 떨어졌으니 굶어야 할 판이라고,

가족도 못 지키는 남자가 무슨 가장이냐고 악을 쓴다.

남편, 이에 질세라 폭력으로 대응한다.

이쯤 되니 서러워 못살겠다, 차라리 죽자 젖먹이 들쳐 업고 강가로 갔다.

시퍼런 강물이 무섭다.

어쩌다 둘 씩 이나 둔 아이, 작은 아이 들쳐 업고 한참을 내려다본다.

“생각 할 거 뭐 있어”

젖먹이 아이 저 멀리 내려놓고 치마폭을 둘러쓴다.

아이 우는 소리가 쩌렁 쩌렁 온 세상을 울리는 듯 했다.

괴롭다, 월암 보살의 행동은 결국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달려가서 아이만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운다.

잿빛구름의 세상…

그 후 어느 날 정기적으로 외출하는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어디 가세요?” “예, 절에 가요.”

이렇듯 부처님과 인연이 된 것도 어느덧 오년쯤

오늘도 부처님 전에 엎드린다.

남편 술 적게 먹고 끼니 걱정 안하고 살게 해 달라고 합장을 한다.

108배를 하고 3000배도했다.

떡도 넉넉히 해서 부처님 전에 올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에게 나눠주며 지극 정성 보시도 해본다.

그러나 남편의 주벽은 여전하고 어려운 가정 경제는 쳇바퀴 돌듯 그대로다.

그날도 남편은 거나하게 취해서 집으로 왔다.

월암 보살은 당연히 쏘아댄다.

“도대체 당신은 인간이냐 뭐냐, 제발 정신 쫌 차려라” “아니, 이 년이”

닥치는 대로 치고 발길로 걷어차고, 변변찮은 세간 우두둑 부순다.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저 인간 내가 당한 만큼 꼭 갚아 줄 거야!”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다.

흐느적흐느적 옮기는 발걸음, 월암 보살은 방황하는 자기 꼴 이 너무 한심해 서럽게 눈물만 쏟아낸다.

“부처님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스님 저는 어떡해요 어떡해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부처님 부처님’ 불러 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들릴 뿐 이다.

월암 보살은 아직도 지혜를 짜 낼 줄 모르고 바깥으로 바깥으로만 찾는 것 같다.

맞아죽을 각오로 남편을 설득한다.

“여보, 나하고 절에 나가요 술친구 그만 만나고 절에 가서 같이 마음공부 좀 해요.”

펄쩍 뛰는 건 당연지사, 끈질기게 채근 대니 그래도 그 인간 자기 한심한 줄 은 알았는지 부스스 따라 나선다.

월암 보살은 기도한다.

“부처님 우리 남편 술 끊게 해주시고, 착하고 열심히 살도록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그럭저럭 일 년여 의 세월이 흐른 지금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절에 다니는 도반들과 술 먹는 날이 많아진다. 뒤 끝은 늘 언어폭력, 폭력…

안되겠다 싶어 도반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리처사와의 곡차는 사양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연히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제는 절에 안 나갈 거야.”

‘아- 부처님, 아- 스님’

월암 보살은 힘이 빠진다. 삶의 하루하루가 지겹다.

열심히 던 신심도 떨어지고 절에 나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든다.

산 다는 것 도 싫고 사람만남도 싫다. ‘이혼을 해?’ 갑자기 생각이 복잡 해 진다.

자녀 양육은 술주정뱅이 한 테 맡길 순 없고 그렇다면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더욱더 복잡해진다.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것도 아니고…’

마루에 걸터앉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본다.

그때, 따르릉, 친구인 월명보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월암 보살, 요즘 절에서 통 볼 수 가 없네, 무슨 일이야?”

“으응, 그렇게 됐어, 모든 게 싫거든 정리도 안 되고 이제는 왜 절에 가야 하는지도 모르 겠고…”

“그러지 말고 나랑 함께 가자, 다시 해보는 거야, 응? 둘 아니다, 하나가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시작해 보자”

“으응, 글쎄.”

딱히 할 일 도 없고 친구는 보고 싶은 마음에 힘없는 걸음걸이는 법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스님의 법문을 듣는 순간 번쩍 귀가 뚫리더니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하나가 된다면? 그이와 내가 둘이 아니라면 그래 여태까지의 나는 접어두고 그이와 하나가 되어보자 하나다, 하나…’

그러다 월암 보살은 늘 부처님께서 모든 것을 해주기만을 기다렸을 뿐 스스로 하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바깥에서 구하려고만 했지 자기 안에서 찾는 지혜는 발휘하지 못 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술 먹는 남편의 마음이 어떤 건지, 왜 술을 먹어야 하는 건지, 오십 줄 에 임박한 월암 보살 이제는 두려울 것 도 없다.

집안을 깔끔하게 꾸며놓고, 바깥일 마칠 때 쯤 전화를 건다.

벌써 한잔 하고 있다. 달려가서 옆자리 꿰 찬다.

같이 떠들고 또 한잔 받아 마신다.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지.’

아내가 있어 술 맛 떨어진다고 처음에 불쾌한 기색이더니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에 못 지 않게 남편과 하나가 되고파 남편의 마음을 잘 살피고 편안하게 해주려고 못 먹는 술도 눈 질끈 감고 마신다. 원한 맺혔던 지난날의 업보가 스르르 녹는다.

‘이 남자 진심으로 사랑해보자.’

사실 여태 까지 살아오면서 신혼시절 잠깐 빼면 남편 좋은 적이 없었다.

술만 먹는 애물단지 폭력이나 일삼는 증오의 대상, 대충 건성으로 살아온 인생.

월암 보살은 오로지 자식에게만 정을 쏟으며 꾸역꾸역 살아오지 않았던가,

늘 못 마땅해서 바가지만 긁고 남편 따로 아내 따로 이제는 아이들도 훌쩍 커버리고 외롭고 외로웠던 월암 보살.

정도 싹이 튼다. 어느 때 는 보다 못한 남편이 나에게 술 먹지 말라고 애정의 눈물을 흘린다.

‘끝까지 하나가 되어보는 기라.’

토닥토닥 다툼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래도록 법당 드나들며 들었던 놓고, 관하고, 비우고 또 지켜보라는 말씀이 이제야 안개 속에 나타나는 유리 성 같이 와 닿는다.

내가 그 마음이 되어 보고 그 마음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 자기 안에서 찾는다는 것, 순서가 없다는 것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배운 것 실천하며 이따금씩 꼭 점검해 본다. 새롭고 희망찬 인생을 예약 했다.

모처럼 부부 동반으로 오대산에 산행을 갔다. 참 맑고, 세상 모든 것 들이 정말 아름답다.

너무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달려온 남편이 등을 내민다.

“아이, 남들 보는데”

남편의 등이 이렇게 포근하고 넓은 것이었는지 몰랐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눕힌 월암 보살의 눈엔 이슬이 맺혀 어느새 바다를 이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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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원
둘 아니게 실천했을 때.. 그 때 흐르는 그 눈물에 업장이 녹아내리는..  따뜻한 볕에 눈 녹듯이 스르륵 녹아버리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