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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추석

내가 없는 추석
서 미 순
 
여느 때와 똑같은 추석이지만 금강경 법회를 들으면서 ‘내가 없는 추석을 보내자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은 다 퍼주어도 ’0‘이라는 빽을 믿고 한번 실천을 해보리라.
 
추석이면 종가집이라 손님이 거의 백분 가까이 오시는지라 음식준비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없는 살림에 뒤돌아서면 제사이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시고 음식을 많이 하는 며느리들이 항상 불만이셨다.
지난번 벌초를 할 때도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 데도 우리보고 계속 음식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며느리가 셋이나 있으면서 아무 음식도 안하고 손님대접을 하는 것이 더 부끄럽다며 잡채와 추어탕, 생선조림, 부침개
등 음식을 장만하여 모두들 잘 드시고 가셨다. 그런데도 늘 음식 많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을 하신다.
 
왜 그러실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사실 추석 며칠 전 큰형님이 전화를 하셔서 어머님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셨다. 모두가 다 맞다고 맞장구를 치고 나니 형님은 내가 너를 데리고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했다며 추석에 보자고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형님께 이번에는 어머님이 원하시는 대로 음식을 하자고 말씀드렸다.
동그랑땡도 우리는 고기를 갈아서 각종 야채와 버섯, 두부를 넣고 큼지막하게 만들었는데, 어머님께서는 요즘 마트에 파는 동그랑땡은 모양도 자그마하니 예쁘고 맛도 좋더라 하시면서 그것을 원하셨다. 새우튀김도 깔끔하게 정리된 냉동 새우를 원하셔서 그것을 샀다. 산적도 자그마하게 조금만 만드니 오히려 시간도 휠씬 절약되었다. 튀김을 하면 제일 먼저 달려오는 아이들. 먹어보더니 “집에서 만든 거 아니네요.” 하니 우리 어머님 “맛있지 않나” 하시니 아이들 모두 “집에서 만든 게 휠 맛있는데요.” 한다.
늘 손수 집에서 만든 음식을 드신 분이라 오히려 마트에서 파는 작고 예쁜 음식이 마음에 드셨나보다. 아이들은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식혜를 먹으며 “할머니, 짱이예요.” 한다. 평상시에 자주 못하는 음식인지라 우리는 많이 만들어서 집에 가져가서 아이들도 준다고 했는데 늘 아껴 쓰시는 어른 입장에서는 며느리들이 헤프게 느껴지셨나 보다.
“어머님,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데도 음식을 이렇게 조금만 해도 돼요?” 여쭈어보니
“나는 워낙 없이 살다보니 조상님 상에 올리는 음식 마련하는 것도 힘이 들어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올린 음식가지고 먹고, 없으면 김치 먹으면 되지.” 하신다.
그래, 결혼한 지 십오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8월 한 달에만도 제사가 세 번이 있다. 어머님, 아버님 잡수시라고 과일이나 맛난 음식을 사가지고 가면 늘 냉장고에 보관해두었다가 제사상에 올리신다. 어쩔 때는 상해서 못 먹을 때도 많다. 그런 어머님을 뵈면서 투덜거렸던 적이 많았는데 그 어른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니 편안하게 음식을 장만할 수 있었다. 결국 어른의 뜻을 따르니 서로 마음 편하고 어머님께서는 손주들이 튀김은 직접 만든 것이 맛있다고 하니 설에는 만들어주라고 하신다.
 
내 것이 맞다고 고집 피울 것이 하나도 없다.
가마솥에 끓인 탕국과 나물, 김치와 생선만 있어도 사오십명이 둘러 앉아서 아침을 먹으니 반찬이 없어도 모두들 맛있게 드신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막내며느리 입장인데 형님의 하소연을 들어드리니 형님 마음 풀려서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어머님 원하시는 대로 하니 편안하고... 이렇게 마음은 퍼주어도 퍼주어도 ‘0’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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