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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의 생각

한 순간의 생각

 

 

 

     보효 허 명 자

 
 
한순간의 생각이 온 우주를 흔들어 놓을 줄 생각조차 못했던 한해였다.
하루의 일과가 새벽 5시30분쯤에 일어나서 새벽 예불, 금강경, 참선 순서로 계획을 세워 놓고, 저녁 9시에 108배 참회진언을 하고, 하루일과를 마감하며 그날의 일들을 점검하면서 착실히 3년 특별정진에 임하며 신행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니던 절에서 팀장을 맡은 의무로 더욱 정진하고, 회원들 간의 우의도 일일이 챙기며, 도반들 가정의 어려운 점도 내 일처럼 챙기며 내 생활에 즐거움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대해사가 개원되면서 모든 신행생활이 180도로 달라졌다.
저 쪽에서 팀장을 내려놓고 온 죄의식도 있고, 스승님께 누를 끼친 점도 죄송스러워 마음 한켠에 항상 죄스러운 마음을 가고 있었다.

대해사 큰스님과의 공부는 많은 경험이 없는 탓에 받아드리는 마음이 어려웠다. 내 나름대로 “만법귀일”화두를 잡고, “만법이 왜 하나로 돌아가는가?”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자리에 앉으면 참선이 되지 않고 자꾸만 잡생각에 화두를 놓치고 온갖 번뇌 망상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도량이 초창기라 온갖 시시비비가 분분하고, 모든 여건은 주어지지 않고 스님께서는 묵묵부답이시고, 마음은 자꾸만 도망을 가자한다.
몸은 더욱 피곤하며 주위의 말들은 너무 많고, 도반들의 전화는 보고 싶다고 온다.
종잡을 수 없는 생활 속에 꼭 이렇게 공부해야 하나? 왜, 이렇게 공부를 시키는 것일까? 의문만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님께서는 글을 써 보라고 말씀하셨다.
글을 쓰는 동안은 그래도 내면과 통하는 것 같아서 편안하고 좋았다.
글 속에서 지금의 심정을 읽을 수 있고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괴로울 때, 억울할 때, 지칠 때마다 혼자서 글을 썼다. 글 속에서 위안을 찾고 또 정진하며 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스님께서 늘 하신 법문이 귓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놓아라, 없다, 공이다, 무슨 죄가 많아서 참회진언을 하느냐? 죄는 본래 없다,
마음 따라 일어난다' 하신 말씀에 그날 이후부터 아침예불과 108배도 모두 놓고 생활 속에서 버리는 작업과 색과 공의 자리를 지켜갔다.
스님께서 '눈을 바깥으로 보지 말고 내면으로 돌려라. 내면의 내 모습을 지켜보면 상대의 모습에 끄달릴 이유가 없다.'고 하신 말씀에 모든 것을 안으로 놓고 글을 쓰고 지켜보고 공 자리에 놓는 습관을 하고 간다.
어느날 부터인가 참선 시간에 내면의 자리와 대화를 주고받을 수가 있었다.

글로써 행을 하게 만들고 그 행을 하느라 온갖 실험을 하게 되고, 그 실험에 지치면 그때는 불쑥 나와서 이러이러 하지 않았느냐? 답해준다.
어느 날은 버스 안에서 글이 올라와서 적어 보니, 글로서 토닥토닥
달래준다. 이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의 길 따라서 반야의 지혜 찾아 길 따라 간다. 몇 개월 안되는 시간이지만 10년을 넘게 공부했을 때보다 더욱 정진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불평불만을 드려도 묵묵부답으로 오직 놓아라, 없다. 공이다, 색이 공으로 화했다는 이 말씀을 끊임없이 하신 덕분에 저의 귀가 열렸나 봅니다.

잘 하려는 마음도 시비를 일으키는 마음도 놓아진다. 다만 내면의 그 길을 따라 행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일어나는 근심 걱정을 믿고 놓고 맡기며 가려고 한다.
금강경 시간에 하신 말씀을 적어가면서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올라오는 마음을 실천 하려고 노력한다.
했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 과거에 집착함이며
하고 있다는 생각에 걸려 있다면 상에 걸려 있음이요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다면 한 발 물러남이니
했다, 하고 있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함이 없이 해야 한다.
내면의 소리를 적어가면서 행으로 옮기려고 노력하고 내면으로 따라 간다.
가다가 힘들면 쉬었다 간다.

그 동안 열심히 이끌어 주신 스승님 고맙습니다.
더욱 열심히 정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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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원
제1회 한바다축제에서 발표된 신행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