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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황금기

내 인생의 황금기

 
 
                                                                         여원회 연실 정일분
 
저는 선원에 인연되어 공부하게 된 것이 십년이 넘었습니다만, 우리 선원장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공부하게 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올해 65세인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가 아닌가 합니다. 당시 선원에 다니면서 저는 큰스님의 법이 너무나 좋아 흠뻑 취해있었습니다. 큰스님의 가르침 덕분에 저는 사람 사는 도리를 알게 되었고, 남편이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어느 날 갑자기 길가에 나앉을 처지가 되었을 때도 큰스님의 가르침 덕분에 흔들림 없이 대처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절박하게 관(觀)하다 보니 참 많은 체험도 했습니다. 무지한 저에게 사람 사는 도리를 알게 해 주신 큰스님의 은혜는 갚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십여 년 동안 큰스님 정기법회에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을 만큼 열정적으로 다녔습니다만 지금의 선원장스님과는 인연이 없어서 법회에서 한 번도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스님과 개인적으로 뵐 일도 없었기 때문에 따로 친분도 없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여건상 다른 도반들처럼 신행회 법회에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신행회 법회에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와서 신행회 법회를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날 지금의 우리 선원장스님께서 법회를 주관하고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저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신도수련회가 있는데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으니 한 번 참석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후 저는 욕심이 생겨 가족들을 다 참석시키려고 수련회 등록을 빨리 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께서 우연히 지나가시다가 저를 보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번이 마지막 수련회가 될지 모르니 가족들 다 데려오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보살님 혼자 오세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날 바로 등록을 했고 그 역사적인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참석하셨던 분들은 누구나 다 아시겠지만 그 수련회는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대단한 수련회였습니다. 감동과 법열로 가득 찼던 그 수련회는 아마 제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스님이 아니시면 그 누구도 그런 수련회는 감히 상상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수련회를 계기로 그 동안 공부 한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막연하게 하고 있었는가를 알게 되었고 큰스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얼마나 잘 모르고 있었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수련회 후 보름날 큰스님 비디오 법회가 있었는데 이전에 전혀 몰랐던 법문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련회에 참석했던 신도들은 한결 같이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이는 선원 전체가 들썩들썩 할 정도로 신도들의 반응을 크게 불러일으켰습니다. 앞으로 이런 수련회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스님께서는 결국 그 수련회 때문에 곧바로 대구를 떠나게 되셨고 머나먼 아르헨티나까지 가시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 미리 귀띔해주신 대로 그 수련회가 마지막 수련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그렇게 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때 스님께서 말없이 그렇게 떠나신 난 후 얼마나 가슴 아프게 울었는지 모릅니다. 스님께서 아르헨티나에 가신 후에 제 마음은 하루에도 수없이 스님 계신 아르헨티나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를 다녀오기 위해 여비도 계속 모았으나 적은 비용이 아니다 보니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시간은 흘러 스님께서 결국 다시 오시게 되었고, 지금 여기 경산에서 이렇게 스님을 모시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 할 길이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스님께서 왜 그런 일을 겪으셔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겠구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수련회가 그만큼 대단한 수련회였던 것이지요. 스님을 저 멀리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까지 가시게 할 만큼 말입니다. 그렇지만 스님께서는 이미 그렇게 될 걸 알고 계시면서도 말없이 그 수련회를 주관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 때 스님께서 마지막 수련회가 될지 모르니 꼭 참석하라고 저에게 귀띔 해주신 게 지금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 때 저에게 그렇게 뒤띔을 해주지 않으셨더라면 수련회도 못 갔을 것이고 지금 대해사에서 이렇게 공부도 못하고 있을 테니까요.
사실 선원에서 십년을 넘게 공부한다고 열심히 다녔으나 참 막연하게 다녔던 것 같습니다. 큰스님의 법이 너무 좋아서 흠뻑 취해있긴 했지만 정작 스스로 어떻게 실천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고 막연하게 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성자리에 관(觀)해서 되게 하는 것은 많이 해보았고 체험도 많이 했습니다만, 피안의 세계에 들려면 구체적으로 스스로 무엇을 놓치고 있으며 무엇을 어떻게 실천을 해야 하는지 핵심적인 길을 잘 모른 채 막연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는 항상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항상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언제나 둘로 보고 있었고, 내가 없다고 하면서도 항상 나를 세워놓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으니 진짜 공부를 했다고 할 수가 없겠지요. 선과 악을 모두 떠나야 한다는 스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공부의 문턱에도 닿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선원장스님의 가르침을 접해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선악을 떠나야 한다는 가르침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막연하게 수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착하게 하고, 좋게 하는 것만이 법인 줄 알고 공부해왔으나, 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선과 악, 옳고 그름, 좋고 나쁨, 크고 작음.... 이 모두가 스스로 세워놓은 기준일 뿐임을 알게 되었고, 과거에 그것이 절대적인 양 고집하고 남들을 시비하고 살았으나, 요즘은 그 습이 많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선과 악을 모두 떠나야 한다는 스님의 가르침 덕분에 이와 같은 시비를 떠난 고요함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항상 ‘나’가 없어야 한다는 법문을 수도 없이 듣고 또 들었으면서도 실제로 어떻게 행하는 것이 ‘나’가 없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막연히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자만하면서 살고 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겠습니까. 겉으로는 죽는 척 시늉은 했으나 속에는 언제나 찌꺼기가 남아 있었으니 실제로는 하나도 죽지 않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선원장스님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실천을 해오면서 저에게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과거에는 겉으로는 항상 착한 척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항상 시시비비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대의 어떤 모습들을 보더라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이 들면서 시비도 생기지 않고 상대를 편안하게 보아 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언젠가 택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시간이 급하여 아침 일찍 서둘러 택시를 탔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맞추려고 "아저씨, 이 길로 가주세요." 했는데 아저씨가 화를 버럭 내면서 "길을 잘 알면 아줌마가 운전하지 왜 택시를 탔어요?" 하고 쏘아 붙이면서 내 말은 무시하고 아저씨가 가고 싶은 길로 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저도 같이 화를 벌컥 내면서 '시간이 촉박해서 그러는데 왜 화를 내느냐' 며 따졌을 텐데 제 마음 속에서는 아무런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저씨, 죄송합니다. 제 생각만 하다보니 그랬습니다."하고 사과를 했더니 그 아저씨가 "택시기사 하면서 아줌마 같은 사람 처음 보네요. 저도 죄송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생활 속에서 겪는 아주 작고 흔한 일들이지만 과거에는 이런 경계들에  속아서 항상 나를 세우고 있었으나, 사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지냈던 것 같습니다.
 
스님께 불법의 이치를 배우면서 이와 같은 체험들을 생활 속에서 수도 없이 많이 해왔지만 근자에 있었던 일중에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여덟 세대가 사는 빌라입니다.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없다 보니 빌라 전체가 너무 지저분해서 제가 매일 아침마다 혼자 나와서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그렇게 해오다 보니 몇몇 이웃들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주민들을 설득하여 돈을 걷어서 청소하는 아줌마를 두기로 했답니다. 그런 말이 오고가던 어느 아침, 그 날도 저 혼자 나와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아래층의 아저씨가 갑자기 나오더니 저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아줌마, 청소하지 마!"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이도 저 보다 아래인 사람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저에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니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려고 했습니다.
그 찰나에 스님의 가르침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거꾸로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로 살고 있는 줄 알아요. 그러니 사람들이 사는 것과 정반대로 살면 오히려 그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예요.' 하신 스님의 말씀이 떠올라 아저씨의 모습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보지 말고 거꾸로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속에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이치를 알게 해 준 아저씨가 너무 고마워서 저도 모르게 "아저씨, 고맙습니다." 했더니 또 다시 더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말 안하고 있으니 아저씨는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마 돈을 걷는다고 하니 그 돈을 저에게 주는 걸로 오해했던 모양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같이 화내고 따져서 억울함을 밝히려 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틀림없이 복잡하고 시끄러운 일들이 일어났겠지만 그럴 생각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 아무런 생각도, 찌꺼기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집을 나오다 우연히 그 아저씨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 아저씨가 죄송하다며 백배 사죄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저씨뿐만 아니라 그 아들까지 나와서 용서를 구하며 백배 사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신기하고 묘한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마음도리는 참으로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제가 선원장스님을 만나 이런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내가 죽어 전체와 하나 되는 이치를 알 수나 있었겠습니까? 생활 속에서 이와 같은 크고 작은 일들을 수없이 체험하면서 스님께 감사한 이 마음은 어찌해도 갚을 길이 없겠구나 하는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언제나 “내가 한 게 없어요.”하시며 묵묵히 행으로써 저희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저희 처사는 무슨 일이든 한 번 결정을 하거나 말을 뱉고 나면 누가 뭐라고 해도 두 번 다시 바꾸는 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나 가족들이 어떤 말로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었는데 이제는 제가 말을 하면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않아도 제가 바뀌니 저절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희 처사는 평소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는 사람인데, 어느 날 대해사에 와서 선원장스님을 친견하고 나서 저에게 하는 말이
 "부처님 법이 영영 끊어지는가 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이어지고 있으니 이제는 안심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는 제가 절에 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호응해줄 뿐만 아니라, 며느리가 손자 태일이를 어린이 법회에 보내는 걸 소홀히 하는 걸 보면 아이 어미를 야단을 쳐서 챙겨 보내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스님께서 베풀어 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 덕분입니다.
저는 글도 잘 쓸 줄 모르고 공부라고 하기엔 너무나 미흡하고 부족해서 사람들 앞에 서기가 부끄럽지만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어서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일신을 돌보지 않으시고 저희 중생들을 위해 베풀어 주신 가르침 덕분에 저는 사람 사는 보람을 느끼며 이 나이에 인생의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스님께서 베풀어 주신 금강경법회, 육조단경법회, 그리고 원각경 법회를 통하여 저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온 것 같습니다. 일체의 상을 떠나야 한다는 금강경을 통하여 이 공부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육조단경과 원각경을 하면서 눈과 귀가 번쩍 떠지고 마음에 심지가 밝아져 이 공부는 무엇도 비교할 수 없음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실천을 해보니 그 맛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음을 매일 매일 느낍니다. 인생의 황금기에 황금 나침반을 얻은 기쁨입니다.
 
아무리 좋은 부처님의 경이 눈앞에 많이 있어도 스님의 가르침 없이 어찌 이 맛을 알겠습니까. 스님의 가르침은 하늘에도 비교가 안 되고 바다에도 비교가 안 되고 저로서는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너무나 애써 가르쳐 주시는데, 미흡하고 어리석은 저를 이렇게 이끌어 주시는데 스님께 어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살을 깎고 뼈를 깎아도 스님의 은혜에 어찌 다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공부하는 길만이 스님께 보답하는 길로 알고 둘 아니게 실천하며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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