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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듣기

진심으로 듣기
 
박성희(여 45세)

매주 화요일 ‘언어로 이루는 자기완성’을 공부하면서 집중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리에 들어오질 않아 힘이 들었다. 항상 마음공부를 할 때는 일 생각을 하고 일할 때는 또 마음공부를 생각하여서 집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회를 듣는데 신도님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해학 보살님이 음식 먹는 것이 자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법회 중에 꺼내놓았고 스님께서는 내면에 뭔가 허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보살님의 내면 점검해 보라고 하셨다.  스님의 이 말씀을 듣고 나는 과연 내면이 무엇이 허해서 돈을 쓰는 것에 조절이 안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을 점검하는 것이 나의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효보살님께서 친정어머님 댁에 가서 나이드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중에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과연 나의 자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 엄마일까를 생각해 봤다. 다들 엄마나 부모님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찡하고 뭉클해진다. 그러나 나의 자식들은 과연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고 찡할까? 혹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진정으로 자식에게 필요한 부모가 되려면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공부시간이었다.

며칠이 지나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과 싸워서 같이 살기가 어려워 따로 떨어져 살아야겠다고 한다. 왜냐고 물어보니 할머니가 안 계실 때는 둘이서 밥을 해먹고 있는데 하루는 형이 밥을 하고, 하루는 동생이 설거지를 하는데 동생이 설거지를 하기 싫어서 형 몰래 밥을 해놓고 설거지는 안한다고 했다. 형이 밥 먹은 설거지만 하면 동생은 설거지를 하지 않고 놔두는 것이 눈이 거슬려서 동생에게 이야기해도 말도 안 듣고 형에게 약만 올린다고 한다.
형은 피부색도 희고 공부도 잘하고 깔끔한데 비해 둘째는 피부도 검고 공부도 못하고 지저분하다고 한다. 그리고 형은 맏손주이고 둘째는 동생이라 항상 형에게 치여서 사니 형에게 항상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큰 아이와 작은 아이와의 차별이 심해 작은 아이는 형에게 그 화풀이를 다하는 것 같았다. 큰 아들은 힘들어 못살겠다고 한숨을 쉰다. 방학 동안에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있어야겠다고 한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미안하다. 아들아, 너를 동생으로 낳았으면 이렇게 힘이 들지 않을 텐데……. 미안하다.”  하니 아들이 이런 엄마의 말에 의아해한다. 그래도 형이 좋다고 했다. 동생이 설거지를 안 하고 방 청소를 하지 않으면 네가 해주고 싶은 만큼만 하라고 하니 지저분한 것은 자기가 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건 너의 성격 탓이니 동생을 이해해 주라고 하면서 이제 대학에 가면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과 살아갈 텐데 동생 하나를 다루지 못해서 어떻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큰 리더가 되고 앞으로 힘든 일을 헤쳐 나갈 거냐고 얘기해 주면서 바다와 같은 마음 넓은 사람이 되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면서 스님의 법문을 들려주었다.

시냇물이 모여 큰 바다가 되듯이 너도 큰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한번 되어보라고 하면서 앞으로 큰 사람이 되고 사회의 리더가 되려면 그리고 사람들을 이끄는 위치에서 바라보고 넓은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골고루 수용하는 마음을 가지면 사회생활 하면서도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하면서 웃는다. 아들이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아들아! 고맙다. 키워주지도 못한 엄마에게 힘들 때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하니 우린 부모자식간이라고 한다. 참 고마운 아들이었다.
그리고 스님께서 말씀해주신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세상이 대우주이면 네가 소우주인데 대우주가 가지고 있는 보물을 소우주인 너도 모두 갖고 있다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우주에 보물을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다고 말해주면서 아들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원(願)을 세워보라고 했다.

다음날 작은 아들과 통화를 했다. 작은 아이는 말을 하려고 하다가 아니라고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입은 밥만 먹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입으로 말을 하라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 자기의 불만을 얘기했다. 작은 아이의 불만은 항상 할머니가 형과 자기를 차별하는데 있었고 중학교 때는 공부를 못했는데 고등학교에 가서는 혼자 노력해서 성적이 올라가니 할머니는 형 도움으로 성적이 올라갔다고 하니 속상하고 게다가 도와주지도 않은 형은 그런 말을 하는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안하니 더 속상하다고 했다. 나는 아들에게 혼자 공부해서 성적 올린 것은 누가 알고 있냐고 물었다. 아들은 자기 자신은 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이렇게 네가 노력한 것을 알아주고 또 너 자신이 알아주면 괜찮지 않냐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하니 아들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아들에게도 너를 동생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고 형으로 태어나게 할 걸 그랬다고 하니 동생이 더 좋다고 한다.  만약에 네가 동생이 있는데 동생이 너처럼 형에게 덤비면 너는 어떨 것 같냐고 물으니 웃는다. 형은 그래도 형이니까 네가 먼저 형으로써 대접을 해주면 너도 동생 대접을 제대로 받을 거라고 하니 알았다고 했다.

‘언어로 이루는 자기완성법회’를 통해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스님의 법문을 듣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했을까? 몇 주 전에 아들과 통화 했었다. 그런데 통화 중에 서로가 대화가 통하지 않고 동문서답을 해서 힘이 들었었다. 그러다가 ‘언어로 이루는 자기완성 법회’에서 듣기를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공부하면서 상대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어야 상대를 알 수 있다는 스님 말씀을 듣고 아이들의 말을 귀기우려 들어보았다. 그래서 두 아들이 힘들 때 엄마가 그 상담자 역할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식 사이의 형제간의 갈등은 해결이 되었는데 정작 나의 형제간의 갈등은 해결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 그 긴 긴 갈등의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구미 언니 집에 일 때문에 갔었다. 언니와는 사이가 별로 안 좋아 눈도 안 마주치고 언니 집에 안간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근처에 동생 집에는 왔다가 가면서도 언니 집에는 가기가 싫어 그냥 지나치곤 했다. 사실 어떻게 하면 언니를 안보고 살까도 생각했었다. 이날도 언니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전화는 동생에게 걸었다. 동생 집에서 밥을 먹고 언니 집에 일한 거 갖다 주고 잠시 언니와 함께 있으면서 언니와 눈도 안 마주치고 잠시 있다가 나오려고 하는데 언니가 나를 보고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언니와 마주 앉으면서 마음으로 다짐을 했다. “그래, 내가 하는 것이 아니지. 내 참성품에서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잖아. 오늘 언니와의 대화는 나를 세우지 말고 무조건 내가 져주자.” 그리고 문득 보름 법회에서 스님께서 법문하신 것이 떠올랐다. “묘관찰지. 일체를 관찰하는 지혜가 있다.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지혜가 커진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이런 마음으로 언니와 대화를 하는 동안 나는 언니가 나를 걱정해서 했던 것이지 동생을 미워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기 힘든 세상, 정신 차리고 살아가자고 하면서 지나간 천도재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에게 의논하지 않고 한 것이 언니를 속상하게 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언니와 의논하지 않고 마음대로 한 거 미안하다 하면서 이제부터 언니와 모든 걸 의논하겠다고 하니 언니의 눈빛이 달라졌다. 더 정신 차리고 살겠다고 했다. 혼자 사는 동생을 걱정하는 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앞으로 언니와 의논하면서 살겠다 하니 언니도 그 동안 속상했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항상 언니는 지나간 것을 붙들고 이야기 하고 상대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것 때문에, 그리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상처 받았던 것 때문에 나는 언니가 싫었었다. 그러나 이렇게 언니와 이야기 하고 나니 언니와 나 사이에 쳐져 있던 막이 싹 걷히고 속이 후련해졌다. 언니에게 앞으로 열심히 살고 돈 씀씀이도 줄이고 잘 살겠다고 하고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언니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언니 집을 나왔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스님법문을 듣지 않았다면 또 언니하고 싸우고 기분 나빠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 참성품아, 너무 잘했다. 네가 하니 이렇게 잘 돌아가는데 왜 이렇게 집착을 하면서 살았을까? 내가 잡고 있어 힘들었는데 그걸 몰랐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을 알고 보니 이렇게 관계를 풀어가면서 살게 되는 지혜를 알게 되었다. 언니와의 관계를 잘 해결하고 나니 스스로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일체에 집착하지 않고 놓고 가는 삶이 이토록 가벼운 발걸음이었구나!’ 이제야 이것을 알게 되었지만 지혜의 눈으로 언니와의 관계, 자식과의 관계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음의 힘을 길러주신 스님의 가르침에 너무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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