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불광) [사람과 사람들] 영화 '산상수훈' 감독 대해스님

  • daeha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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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 보도
  • 2017.09.13 19:55
‘영화경映畫經 ’으로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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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배문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 山上垂訓)>은 예수가 갈릴레아의 작은 산 위에서 제자들과 군중에게 설한 가르침으로 ‘성서 중의 성서’로 일컬어진다. 같은 제목의 영화가 한 비구니스님에 의해 만들어졌다. 영화 <산상수훈>은 지난 6월 열린 제39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스펙트럼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기도 했다. 세간에서는 영화 <산상수훈>에 대해 ‘스님이 만든 기독교 영화’라 칭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진리에 대한 영화’다. 기독교니 불교니 하는 종교적 관념을 넘어서 있다. <산상수훈>은 대체 어떤 영화일까, 감독 대해 스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하나님과 인간은 둘이 아닌 것(不二)입니다.”

 

8명의 신학대학원생들이 동굴에 모였다. 미래의 성직자를 희망하는 그들에겐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다. 그들은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의심을 해결해 나가다 믿음의 실체인 궁극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 <산상수훈>은 ① 천국 ② 선악과 ③ 예수님 ④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⑤ 하나님 등 총 5장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질문을 논리적으로 증명해간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다.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천국은 죽어서만 갈 수 있는 곳인가?’, ‘선악과를 따 먹으면 왜 천국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는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인간이 따 먹을 줄 알면서 왜 선악과를 만들어 두셨는가?’,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나에게 죄가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어떻게 해서 내 죄가 사해지는가?’

 

무조건적인 믿음만으로 강요될 수 없는 난해한 철학적 질문들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 특히 주인공 도윤의 말에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끝날 때쯤 영화를 보기 전과 조금은 달라진 자신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대해 스님은 영화를 공부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총 9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 스님이 어떻게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해서 해외 영화제에까지 초청받게 됐을까? 대해 스님과의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출가 수행자로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목적은 인간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본질에서 현상이 나타나고, 그 본질은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우주 삼라만상, 즉 이 세상 모든 것은 본질에 의해 창조됩니다. 수행의 결과로 깨달은 이 본질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본질을 알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요. 언제 어디서나, 언어만 바꾸면 전 세계인이 모두 볼 수 있는 영화야말로 최고의 경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교 출가수행자인 스님이 왜 기독교 경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의아했지만 영화 <산상수훈>은 감독 대해 스님이 기획한 4대 성인聖人 영화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2012년 제작한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시작으로, <산상수훈>을 넘어 불교의 혜능 대사, 공자에 대한 영화도 만들 계획이다.

 

영화 시사회 자리에서는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를 대표하는 4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대담이 이어졌다. 기독교와 천주교의 관점에서 깊이 들어가면 토론의 여지가 많다고 하면서도, 종교를 뛰어넘은 궁극의 진리를 설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모두가 한 마음을 냈다.

논리적으로 모순되고 설명하기 어려운 성경 속의 문제들을 대해 스님은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나님과 인간을 둘로 분리시켜 버렸기 때문에 풀 수 없는 문제가 생겨버린 것입니다. 종이배는 현상으로서 보면 ‘배’에 불과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종이’입니다. 그런데 종이는 보지 못하고 배라고 하는 개별적 현상에만 집착함으로써 원래는 하나였던 종이와 배가 서로 분리되어 버린 것이죠. 결국 종이와 배, 하나님과 인간은 둘이 아닌 것(不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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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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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배문


|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이 나에게도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대해 스님이 늘 가슴이 새기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색(色, 현상)이 곧 공(空, 본질)이요, 공(본질)이 곧 색(현상)인 진리. 이것은 어떤 주장이나 관념이 아닌 세상의 본래 모습이다.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영화 <산상수훈>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공空’이라는 본질에서 창조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은 밖에 있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이 나에게도 있다는 자각을 통해 자신의 본래 완전함을 깨달음으로써 걸림 없는 자유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의 삶에 부딪혀서는 너와 내가 다르고, 내 종교와 그들의 종교에 차별이 있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과 생각들이 괴로움을 만들어낸다. 대해 스님은 말한다. 이론은 필요 없다고. 몸소 실천을 통해 증득하는 것만이 진정한 구원이 될 수 있다.

“끊임없이 매 순간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좋고 나쁨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판단들이 올라올 때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빨리 이룰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느리게 할 것도 없습니다. 목적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려놓지 않았다고 후회할 필요도 없고요. 후회하는 마음마저 지금 당장, 내려놓으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컴컴한 방에서 갑자기 불이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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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최배문


대해 스님과 인터뷰 일정을 조율할 즈음, 읽고 있던 책 한 권이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명상지도자 마이클 A. 싱어의 『될 일은 된다』, 책의 원제는 『The Surrender Experiment(내맡기기 실험)』이다. 저자가 40여 년에 걸쳐 자신의 인생 앞에 들이닥친 것들에 대해 호오好惡를 내려놓고 내맡기는 수행을 해온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대해 스님의 말씀이 이 책의 내용과도 맞닿아 있었다. 역시 진리는 하나다.

“도윤 역을 맡았던 배우 백서빈 씨가 모스크바 영화제 기자회견장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마늘만 안 먹었지 동굴에서 사람 돼서 나왔다고.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시나리오가 마늘이라고요.”

우리에겐 영화 <산상수훈>이 마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만, 철학적이고 지적인 논쟁을 마늘을 씹어 먹듯 곱씹다보면 영화관이라는 어두운 동굴을 빠져나왔을 때 ‘진짜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본질을 깨달은 전지전능한 인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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