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든 불경이든 본질은 통하기 마련”
기사승인 2017.07.11 02: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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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산상수훈> 감독 대해스님…모스크바 국제영화제서 ‘호평’ 일색
조계종 국제선원 선원장 대해스님 |
“성경이든 불경이든 결국 본질은 하나로 통하기 마련입니다. 영화 <산상수훈> 역시 인간의 본질을 다룬 영화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직자들이 영화를 보고 ‘많은 공감과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해준 것이 그 증거겠지요.”
영화 감독으로 기자들 앞에 선 조계종 국제선원 선원장 대해스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산상수훈>을 만든 계기를 묻자 스님은 “진리는 모두 하나로 통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관용구가 낳은 파장이 꽤 컸다. 진원은 러시아였다.
스님이 성경을 소재로 메가폰을 잡아 주목받은 영화 산상수훈이 지난달 22~29일 열린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큰 호평을 받았다. 대해스님은 10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경쟁부문, 비경쟁부문을 통틀어 가장 주목받은 영화로 선정됐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산상수훈’은 신약성서 ‘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산상설교를 뜻한다.
영화는 124분 러닝타임 내내 8명의 신학대학원생들이 동굴에서 문답을 나누는 단조로운 형식이다. 하지만 문답의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면 빨리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인간이 따먹을 줄 알면서 왜 선악과를 만들어 두셨는가’, ‘정녕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등 금기시되는 질문이 주를 이룬다.
산상수훈은 이번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인 ‘스펙트럼 섹션’에 초청을 받았다. 세계적 거장들의 신작을 주로 소개하는 부문이다. 또 대해스님은 아시아 영화에 주어지는 넷팩(NETPAC)상 심사위원에 이름이 올랐다. 영화로 초청을 받은 감독이 영화제 심사위원에 위촉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스님은 “지난 10년간 90편이 넘는 영화를 찍은 원력이 영화제 관계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이변은 영화제 영화 상영 이후에도 계속됐다. 러시아 영화 전문 매체를 비롯한 언론의 집중 조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기독교계에서도 영화를 호평했다. 러시아 정교회 소속 바체슬라브 하리노프 주교는 “영화에 나오는 신학생들의 비유와 생각은 신학적으로 깨어있고 또한 진중하다. 아울러 인류학과 자연의 소통을 다루고 있다”며 “중요하고 깊이 있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에스토니아의 탈린 영화제, 불가리아의 소피아 영화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영화제 등 세계 각국 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며, 러시아의 KTX라 할 수 있는 삽산 열차 객실에서 9~10월 영화를 상영하게 됐다.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산상수훈의 국내 개봉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대해스님은 "현재 배급사를 물색 중이다. 상영이 확정 되는대로 홍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모스크바 영화제 레드카펫에 선 대해스님과 산상수훈 주연 백서빈 씨. 사진=국제선원. |
포교를 일생의 과업으로 삼아온 대해스님이 처음 메가폰을 잡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대중들에게 쉽고 빠르게 다가가기 좋은 방편으로 ‘영화’를 꼽은 스님은 2007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 <색즉시공 공즉시색>, <무엇이 진짜 나인가>, <이해가 되어야 살이 빠진다>, <대방광불 논리회로> 등 91편의 중ㆍ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스님의 영화는 UNICA 세계영화제와 영국 BIAFF 국제영화제, 오스트리아 Festival of Nations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총 63회 수상을 거머쥐며 두각을 나타냈다.
영화 산상수훈은 “세계 4대 성인의 가르침을 정확히 밝히겠다”는 원력으로 시작한 대해스님의 ‘4대 성인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 영화다. 앞서 스님은 2012년 단편 영화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제작한 바 있다. 소크라테스의 유언은 이후 2013년 11월 18일 열린 러시어 네브스키 블라고비스트 기독교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돼 눈길을 끌었다.
대해스님은 앞으로 ‘부처님’과 ‘공자’를 주제로 한 영화를 추가 제작할 계획이다.
김정현 기자 budg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