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아끼며 사는 집안에서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께서 절약정신을 길러 주셨습니다. 십원이 백원이 되고 백원이 천원이 되고 천원이 만원이 된다고 잔돈을 무서워하고 아껴쓰라는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보니 저의 시어머니는 보증을 잘못서서 망해버린 시댁을 일으켜 세우시느라 갖은 고초를 겪고 자수성가하신 분이셔서 친정집보다 더 무섭게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모든 것을 지독하게 아껴야 했습니다.
남편이 첫 월급을 타서 저에게 주었었는데 이것을 아신 시어머님의 서슬 퍼런 호통에 경제권과 집안 살림을 모두 남편이 도맡게 되었습니다. 쌀, 고춧가루에서부터 전기세, 물세 하나까지 모든 것을 남편이 사다주며 관리하고 살아왔습니다. 남편 또한 시어머님의 엄한 교육에 철저하게 아끼며 사는 것이 생활화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정말 최소한의 반찬값만 받아서 생활을 해왔습니다. 집에 재산이 어느 정도 모인 뒤에도 저에게 주어진 돈도, 제가 쓸 수 있는 돈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러다 보니 궁핍하게 보일 정도로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게 되었습니다. 아니, 절약을 떠나서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고 살았었습니다. 쌀 씻은 물은 화분과 화단에 주고, 겨울에는 물통에 모아서 마당에 있는 꽃나무에 주고 세탁기 마지막 물은 대야에 받아서 변기, 현관 앞 청소와 걸레를 빱니다. 설거지 할 때도 물을 처음부터 틀어서 하지 않고 바가지에 받아서 씻고 기름이 없을 땐 세제도 쓰지 않습니다.
생선 사온 비닐은 빨래할 때 세탁기에서 나오는 비눗물로 씻어서 씁니다. 채소를 씻을 때도 대야에 물 받아서 양을 조금 넣고 살살 흔들어 깨끗이 씻어서 흐르는 물에 헹굽니다. 비누도 쓰다 남은 조각은 다른 용기에 녹여서 작은 토막 하나 버리지 않고 쓰고 있습니다. 때로는 양말도 살짝 뒤꿈치 나온 것도 신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좀 답답하다 할지 몰라도 저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심지어 주위사람들에게 “저렇게 살아서 뭘 하겠는가!” 하는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동네에서 우리 집 전기세와 물세가 제일 적게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집살이는 너무나 힘이 들어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과의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내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나 서러웠습니다. “내 욕심을 채워야지 이제까지 바보같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남편에게 “내 돈 내놔라! 내 돈 찾아서 내 갈 길 찾아 갈 거다.” 하며 돈을 달라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간다고 하니 정말 갈까봐 무서워서 돈을 더 안주었습니다. 그러니 더 빠듯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더 뺏어낼까? 어떻게 하면 더 받아낼까?”하는 마음에 물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게 되고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커져갔습니다. 그 밑바닥에는 남편에 대한 애착이 깔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애착만큼 원망과 미움이 커지고, 남편이 채워주지 않아 허한 마음을 물질로 대신 채우려고 물질에 대한 착도 깊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되어 변을 보면 음식이 불은 채로 그대로 나오고 얼굴이 퉁퉁 부어서 살았습니다. 병원에 가니 현대판 영양실조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속이 허하니까 계속 있는 대로 한없이 먹곤 했었습니다.
나의 허함을 채워준 곳
그러다 여기 이 자리에 국제선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공부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절은 아직 완전히 기반이 잡힌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신도님들이 안심하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불사를 이루라는 대해스님의 말씀에 임원단을 중심으로 불사가 추진되었고, 대해스님께서 청정불사운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그러했겠지만 저는 “내가 공부를 하려면 이 자리가 꼭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돈이든 음식이든 물건이든 조금이라도 생기면 생기는 대로 선원에 가져왔습니다. 저에게 생기는 돈 만원은 돈 있는 사람의 십만 원 이상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본래 제게 주어져 있는 돈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쌀을 사다주면 그 쌀의 일부를 팔기도 하고, 자식들이 제 생일날 주는 용돈,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사람들이 가져오는 부조금 등 여러 가지 방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사금을 내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희한하게도 뜻하지 않은 돈이 생기기도 하고 또 돈을 마련해 내는 쪽으로 지혜가 생겨 제 형편대로 불사금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쓰던 헌 비닐봉지를 가져오기도 하고, 또 남편이 고추를 사오면 그 일부를 가져오기도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왜 이렇게 남편에게 끌려 다니며 사는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조건 놓으라고 하시는 말씀에, 물질과 남편으로 인해 들끓는 마음을 돌리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길을 가든 무얼 하든 늘 ‘언제까지 시시비비 가리겠나? 놓자 놓자, 또 놓자.’노래를 부르며 다녔습니다.
‘또 어떻게 내려놓나? 어떻게 비우나?’ 항상 생각을 하였습니다.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출근하는 남편에게 “여보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사와!” 하기도 해보고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옆에 지나가는 남편을 와락 껴안아보기도 하고, 내가 없음을 실천해보면서 나름대로 놓아 나갔습니다.
나를 놓아가며
제가 그렇게 저의 업식業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인지 저희 집안의 고통 받는 의식들과 저희집안과 인연을 맺은 사돈 댁 집안의 고통 받는 의식들까지 제 꿈에 보이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대해스님께 말씀을 드리고 제가 천도재비를 마련해서 지내기도 하고 또 각각의 인연대로 천도재를 올리게도 하였는데, 그 때 제가 재비를 마련하여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그때 마다 묘하게 돈이 돌아가서 재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의식들에 대해서 천도재를 올렸습니다. 오랜 세월 어둠에 묻혀 있던 의식들을 깨어나게 하는 집안의 대청소를 한 셈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하고나니 내 의식이 맑아졌고, 내 육신이 건강해지고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한 번은 이웃집 살던 사람을 길에서 오랜만에 마주쳤는데 그 사람이 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부어있던 부기가 빠지고 이제 제살이 차올라서 본 얼굴이 돌아왔고 또 매우 편안한 인상으로 바뀌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달 정도 전에는 대장을 실로 배에 꿰매어 붙여놓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이 많이 편안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남편이 몇 년 전에 신장암 판정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으며, 큰 아들도 몇 년 전 장사를 시작해서 고생을 많이 하더니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둘째도 집안에 큰 우환 없이 잘 살고 있고, 셋째는 작년에 아들도 낳고 선원에서 열심히 공부 잘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질에 대한 착을 놓으니 돈이 들어와
그렇게 불사금을 내고, 재를 지내고 하면서 또 제 마음청정불사를 했습니다. 완전히 나를 내려놓는 공부 길로 들어갔습니다.
‘남편도 내 것이 아니다, 이웃집 신랑이다.’ 라고 생각하며 남편에 대한 애착을 놓았고, “죽어도 바라지 말자.”하면서 남편이 나에게 어떻게 해도 다 응해주고 절대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은 남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습니다. 더 이상 남편에 의해 내 마음이 요동치거나 끄달리지 않고 제가 제 삶을 키워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렇게 애착과 원망을 놓게 되니까 남편이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적은 돈이나마 반찬값 외에 주기도 하고, 고기를 사오는 횟수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남편이 자기 얼굴에 점 빼는데 같이 점을 빼러 가자고 해서 점을 빼고 오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돈을 주지 않아도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주면 주는 대로 살자, 불편해도 주어진 대로 현실에 충실하고 살자, 욕심내봐야 될 일도 아니잖아?’ 하면서 그렇게 물질에 대한 착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불사금도 그렇고 천도재비도 그렇고 꼭 필요할 땐 필요한 만큼 생기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 체험을 통해 ‘필요하니까 물질이 있지, 내가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꼭 필요한 것은 다 들어오게 되어있구나! 만약 안 들어오면 까짓것 안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걱정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작년 11월경에 남편이 자신의 유산에 대한 분배계획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신장암이니 경과를 봐서 건강이 괜찮으면 자신이 좀 더 관리를 하겠지만 만약 건강이 안 좋아지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미리 저에게 주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에 대한 착을 이미 떠난 저는 그냥 남편이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오랜 업식에서 벗어나
그리고 이제는 음식도 함부로 안 먹고 먹어야 할 만큼만 생각해서 먹습니다. 마음이 허하지 않으니 음식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청정생활불사운동이 제게는 그 동안의 공부에 대해 한 점을 찍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해스님께서 그렇게 놓고 가라고 하셔도 그것이 잘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뜻을 알고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정생활불사운동을 통해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얻은 저는 정말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한 것에 비해 훨씬 넘치도록 부처님께서 제게 주셨습니다. 그 많은 아픔을 겪으며 울며불며 매달리던 저에게 한없는 자비의 가르침으로 이끌어 주셔서, 억겁의 세월로 쌓아 온 업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신 대해스님께 진심어린 감사의 회향을 올리오며 앞으로 더욱 정진 또 하겠습니다.